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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확성기와 부엌

입력
2015.09.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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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부속합의서에 따라 2004년 6월16일 서부전선 무력부대 오두산전망대에서 군인들이 대북선전용 대형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부속합의서에 따라 2004년 6월16일 서부전선 무력부대 오두산전망대에서 군인들이 대북선전용 대형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확성기를 이용한 선전방송에 무척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가까스로 차단해 놓은 정보를 공개하고 억눌러 놓은 욕망을 건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욕망을 건드는 전략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최대 무기이다. 1989년 독일이 통일된 데에는 88년 올림픽 당시 서울 모습이 크게 기여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교통 체증이 일어날 정도로 자동차가 넘쳐 나는 모습에 트라반트 승용차를 주문하면 12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동독 시민들이 폭발했다는 농담이다.

체제 경쟁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이 전략은 의외로 유서가 깊어 냉전이 본격화되던 1950년대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자유 진영의 대표 미국과 공산 진영의 우두머리 소련은 핵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이듬해에 “과학, 기술, 문화” 전시를 뉴욕과 모스크바에서 열기로 합의한다. 때마침 모스크바는 1959년 세계 엑스포 개최 도시였다. 소련은 엑스포의 취지에 맞게 공산 진영의 과학과 기술 성취를 뽐내는 것으로 전시관을 가득 채웠다. 우주 경쟁에서 미국의 콧대를 납작하게 한 스푸트니크 모형을 필두로 최첨단 과학기술품으로 전시관을 꾸몄다.

하지만 미국은 완전히 다른 전략을 들고나왔다. 미국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를 선택했다. 전시기간 6주 동안 300만명이 몰려 4번이나 바닥재를 다시 깔아야 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영화가 모스크바 시민들의 마음을 빼앗았다면, 옆 전시실에 설치된 미국 교외주택의 부엌 모형은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의 넋을 빼놓았다.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닉슨은 전시 오픈에 맞추어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전후 미국 고위 정치인의 최초 소련 방문이었다. 이에 서기장 흐루쇼프가 직접 응대에 나선 것이다.

미국관 테이프컷팅을 손수한 닉슨은 흐루쇼프를 미국 교외 주택 모델로 안내했다. 롱아일랜드 건설업자가 짓고 메이시스 백화점 제품으로 집을 꾸민 전형적인 미국 교외 주택이었다. 방 6개에 1만4,000달러짜리 모델하우스였다. 냉장고, 세탁기, 식기세척기, 전자렌지 등 풀 패키지로 갖춰놓은 부엌에는 늘씬한 모델이 미국 중산층 주부를 연기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전시물을 본 흐루쇼프는 당황해 한다.

이 모습을 보고 닉슨이 한 마디 건넨다. “이 부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후르쇼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우리도 이런 건 있소”라고 응수한다. 그러자 닉슨은 “이건 최신 모델이에요. 집에 수천 가지 옵션으로 빌트인할 수 있는 종류죠.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샘플을 주고 싶군요. 알다시피 지금 우리 철강노동자들이 파업중입니다만, 그들도 이 집을 살 수 있지요”로 맞받는다. 흐루쇼프도 지지 않고 “우리에게도 1만 4,000달러짜리 집을 살 수 있는 철강 노동자들이 있소이다.…우리에게 보여준 이런 물건들은 흥미롭긴 하지만 쓸모는 없어요. 잡동사니일 뿐이요”라고 쏘아붙인다. 핵전쟁의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던 냉전 시기 양대 강국의 지도자들이 부엌 앞에서 설전을 벌인 것이다.

갑자기 냉담해진 분위기는 때마침 흘러나온 재즈 음악 덕에 가까스로 무마된다. 닉슨이 “저는 재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자, 흐루쇼프는 기다렸다는 듯 대꾸한다. “저도 안 좋아합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의견일치를 본 순간이었다. 두 거물은 너무 직설적이었다느니 농담이었다면서 이내 사태를 수습하려 애쓴다. 이 사건은 이제 ‘부엌 논쟁’이라 불린다. 세탁기를 놓고 벌인 소련 서기장과 미국 부통령의 논쟁은 거의 초현실적이다.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적이고 사전 조율 없이 벌인 논쟁이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소련 사람들을 놀래키려는 의도는 없다고 닉슨은 강하게 부정했지만, 미국관 전시가 노린 것은 ‘부러움’이었다. 냉전의 승패는 이 순간 결정난 것일지 모른다. 일상의 욕망이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기까지는 30년이 더 필요했지만 말이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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