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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유지의 비극? 공유지가 없는 비극

입력
2015.09.0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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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모두가 공유하는 목초지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소를 방목하여 풀을 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키우는 가축의 수를 늘리자, 목초지는 급격히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목초지는 황무지가 되어 버렸고, 소를 키우던 집들은 오히려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개별주체들이 공유지를 통해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관리되지 않는 공유지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공유지의 비극’ 이론이다.

경제학계는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해 정부가 규제할 것이냐, 시장에 맡길 것이냐를 두고 첨예한 논쟁을 벌여왔다.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측은 결국 공유지의 재산권이 명확하지 않아 발생하는 일이므로,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까지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 ‘공유지가 없는 비극’을 나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정부는 40년이 넘은 그린벨트를 사실상 전면 해제했다. 30만㎡이하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지자체에 넘겨버린 것이다. 재산권 관련해 쏟아지던 주민 불편들을 무시할 순 없지만, 난개발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개발권한을 지자체에게 그냥 넘긴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정부가 제시한 30만㎡ 이하 기준은 산업단지는 힘들더라도 대규모로 택지를 개발하기에는 충분한 면적이다. 인구유입효과와 경제 활성화란 미명 하에 지자체들간에 그린벨트를 해제해 개발지를 넓히려고 하는 개발 경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정부가 서민주거대책으로 내놓은 재개발ㆍ재건축 규제 완화까지 연결해 생각하면 사상 최악의 개발 대란의 징조까지 읽을 수 있다.

정부의 공유지 훼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8월 말에는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승인이 내려졌다. 2012년과 2013년에는 거부되었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그간 변화된 상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엔 통과됐다. 설악산은 국립공원 자연보호구역이면서,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 산림유전자보호구역 등 보호규제가 5개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호규제가 많은 곳이 뚫렸으니 현재 지리산, 월출산, 신불산 등에서 추진되고 있는 케이블카 건설 사업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다. 케이블카를 짓고 나면 거기에 걸맞은 호화 위락시설을 짓기 위해 또 규제를 또 대폭 완화하려고 할 테다. 결국 자연자원이라는 모두의 것은 망가지고, 위락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편익만 높아질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바다의 그린벨트”라고 불리던 수산자원보호구역 기준까지 대폭 완화했다. 현행법상 보호구역으로 묶인 지역은 음식점이나 숙박시설 등을 지을 수 없었지만, 400㎢에 달하는 해변지역을 풀어 펜션, 야영장이나 식당 등의 건축이 가능해졌다. 속된 말로 가뜩이나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은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펜션에 숙박해야만 구경할 수 있다는 푸념이 나오는 상황에서, 모두의 것인 수산자원을 포기하면서까지 개발을 받아들이라고 종용하는 건 납득이 되질 않는다. 정부는 “서비스 산업 활성화 대책”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그런 서비스 인프라라면 단호히 거부하고 싶다.

공유지가 이렇게 막대한 수준으로 포기되는 건 막개발로 악명이 높았던 이명박정부에서조차 없었던 일이다. 4대강 개발로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발생했지만, 그래도 이명박정부는 이토록 공공연하게 공유지 자체를 없애려고 하지는 않았다. 각종 규제 완화에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실은 그 보호해야 할 환경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훨씬 심각한 일이 아닐까. ‘공유지가 없는 비극’이 가시화되는 시점이 되면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유지의 존재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이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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