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줄이고 부실 예방에 초점"
금감원·한은·예보 개선안 잇따라
올 들어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권 감독기관들 간의 ‘친절’ 경쟁이 뜨겁다. 그간의 과도한 검사 부담이 금융사의 자율과 창의를 가로막고 있다는 불만이 폭주했던 상황. 때문에 각종 서류제출 요구를 줄이고, 간단한 제재는 금융사에 맡기고, 벌주기보다 상담하는 식의 검사를 하겠다며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군림’하던 감독기관의 자성은 반갑지만 한편에선 한 때 보여주기식 캠페인에 그치지 않을지, 또 다른 한편에선 자칫 미래의 잠재 부실을 키우는 불씨가 되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일 예금보험공사는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금융개혁회의 의결을 거쳐 ‘조사ㆍ공동검사 관행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법령상 금감원과의 공동검사가 많은 현실에서, 금융 감독당국의 검사 개선 방향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취지다.
내용도 비슷하다. ▦현장검사 전 최대한 서면분석을 통해 금융사에 요구하던 서류를 줄이고 ▦현장확인도 경영전반에 대한 포괄점검 대신 사전 부실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시정명령 대신 금융사의 자율개선을 유도하고, 조사 및 사후조치 기간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러자 한은도 이날 예정에 없던 ‘금융검사업무 개선 현황’이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간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예보에서 발표하니 때를 맞추자는 차원”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한은 역시 금융사 부담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 검사 대상은 대형 은행ㆍ증권사로 압축하고, 경영실태 전반을 따지는 종합검사 대신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분야에 대한 부문검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한은은 심지어 검사역들이 금융사 직원의 시간 여유까지 고려해 ‘합동면담’하겠다는 아이디어까지 냈다.
앞서 금융위와 금감원은 작년부터 “금융사 검사ㆍ제재 개혁이 금융개혁의 첫 걸음”이라며 여러 차례 검사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 4월 발표한 방안에서 금감원은 “앞으로 금융사 검사는 ‘건전성 검사’와 ‘준법성 검사’로 나눠,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실시하겠다”며 “특히 건전성 검사는 ‘컨설팅’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감독기관들의 이런 변화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민간(농협금융 회장) 시절 ‘피검’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조용한 감독’을 표방한 진웅섭 금감원장의 기조가 더해져 과거보다는 확실히 ‘부드러운’ 검사가 강조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금융사의 부담을 감독기관들이 ‘서로의 탓’으로 돌리면서 최근의 친절 경쟁이 불 붙은 측면도 있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 4월 발표에서 “한은, 예보 등이 (금감원을 통해) 금융사에 요구하는 자료가 많아 혼자만의 노력으론 관행 개선에 한계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해 한은 등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금융사들은 어쨌든 반가운 눈치다. 현장에선 “변화가 체감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올 초 한은ㆍ금감원 공동검사를 받은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료제출 요구가 예전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명령휴가제(직원을 불시에 휴가 보내고 회사가 담당업무를 감사하는 제도)가 규정엔 있지만, 현실 인력 여건상 시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더니 검사관이 이해해 주더라.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금감원 내부 검사 조직에선 요즘 “까칠한 검사는 되도록 자제하라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느껴진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사에 대한 자문과 자율 권장이 자칫 미래의 더 큰 사고를 방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사들은 이런 기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걱정이다.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거나, 감독당국 수장이 바뀌면 언제 또 검사 관행이 바뀔 지 모르기 때문이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위험수위에 다다른 가계부채 문제만 봐도, 은행 별로는 당국의 간섭에 피곤함을 호소할 수 있지만 반드시 철저 관리해야 할 분야”라며 “검사의 불합리한 관습을 고치는 건 필요하지만, 행여 검사 횟수 축소 같은 금융감독의 ‘생략’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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