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호 계간지 통해 사과 "15년 전 문제제기 소홀히 넘겨"
좌담서 문학상 등 문단 권력 비판… 대표·1세대 편집위원 내달 사퇴
소설가 신경숙씨 표절 논란에서 비판을 받았던 문학동네 출판사가 가을호 계간지를 통해 표절 사실을 확인하고 독자에게 사과했다. 강태형 대표를 비롯한 편집위원 6인은 10월 주주총회를 통해 물러날 것으로 전해졌다. 이념의 시대를 지나 90년대 이후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키워온 문학동네가 20여년 만에 문단의 권력이 됐다는 비판 앞에서 새로운 방향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문학동네 편집위원인 권희철 문학평론가는 계간지 서문에서 15년 전 처음으로 신씨 표절 논란이 제기됐다가 그대로 묻힌 것에 대해 “제기된 문제를 소홀히 넘긴 것에 대해서 나를 비롯한 어떤 평론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이번 일로 깊은 실망을 느꼈을 독자 여러분께 사과 드린다. 나를 비롯해서 문학동네 편집위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일련의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인정했다. 표절 여부에 대해서는 두 작품(미시마 유키오 ‘우국’과 신경숙 ‘전설’)의 주제 등 여러 면에서 차이점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유사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설’은 ‘우국’의 표절”이라고 못 박았다.
이기호 김도언 장강명 손아람 소설가들이 가진 좌담(사회 신형철 평론가)에서는 문예지가 장악한 공모제와 문학상의 문제, 편집위원 역할의 한계 등을 놓고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다. 손 작가는 "문학동네에 첫 소설 원고를 보냈는데 뜯어 보지도 않고 반송했다"며 다른 데서 출간된 뒤 "문학동네에서 작품이 좋던데 '다음 소설을 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아 만났으나 결국엔 문학동네작가상에 원고를 내보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공모전 수상경력이 없으면 작가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공모전이 문학적 카스트를 실현하는 제도”가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모제를 폐지하고 출판사들이 투고를 받아 책을 출간해 시장에서 경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신형철 평론가는 "최대한 많은 책을 시장에 내보내고 오직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하자는 건 이상적"이라며 "투고 원고는 반송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반박했다. 김 작가는 만약 투고 방식으로 전환하더라도 비평가들의 지지가 없기 때문에 공모전 출신 작가와 경쟁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문학 출판사에서 공모제를 운영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에서 견제를 하는 건지 당선작에 대해 조금도 언급을 안 해준다.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고 꼬집었다.
논의는 문예지들이 자기 출판사 책을 상찬하고 다른 출판사 책엔 침묵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신 평론가는 “(문예지와 평론가들이) 이미 비평적 선택을 한 작가의 책을 출간했기 때문에 그 작가를 다시 한 번 옹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손 작가는 “대형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서 마련된 구조”라고 공격했다. 장 작가는 주류 출판사의 비평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작가들의 문제를 지적하며 “작가로서 자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담과 함께 김병익, 도정일, 최원식 원로 비평가 3인이 각자의 글을 통해 비판이 부재한 비평, 소위 ‘주례사 비평’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논했다. 문학동네는 계간지를 통해 문학권력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권희철 평론가는 서문 말미에서 “비판적 대화의 시도가 한 번의 특집 기획으로 끝날 수 있을 리 없다”며 겨울호 계간지에 연속 기획을 예고했다.
우선 가을호를 통해 표절에 대한 사과와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담은 문학동네는 인적인 세대교체도 추진한다. 강태형 대표와 1세대 편집위원 6인(이문재 남진우 황종연 서영채 류보선 신수정)이 물러나고 신형철 권희철 등 2세대 평론가들이 내년 봄 계간지부터 바톤을 이어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10월 주주총회에서 전원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염현숙 편집이사는 “논의 단계”라며 “10월 이후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퇴진 사실을 확인하며 “세대교체에 관한 논의는 지난해부터 있었으나 신씨 논란이 계기가 됐다”고 인정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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