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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유작 소유권은 누구에… 에스더 호페는 부당했나

입력
2015.09.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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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Frants Kafka, 1883~1924)가 자신의 유작과 편지 일기 일체를 읽지도 말고 태워 없애라 유언한 일, 그의 친구이자 작가 막스 브로트(Max Brod, 1884~1968ㆍ오른쪽)가 유언을 따르지 않고 원고들을 정리해 작품과 서간집 등을 출간한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카프카의 ‘소송’ ‘아메리카’ ‘성’같은 작품은 브로트 덕에 세상에 전해졌고,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카프카는 없었을 것이다.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자로서 시오니즘과 거리를 두었던 카프카와 달리 맹렬한 시오니스트였던 브로트는 1939년 나치 위협을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정착했다. 그는 그 전에도 후에도, 썩 알려진 건 없지만 왕성하게 자신의 작품을 썼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카프카의 원고를 정리했을 것이다. 그에겐 쪽수도 붙어 있지 않은 카프카의 미완성 작품 원고와 편지가 상당량 남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를 도와 원고를 정리하던 이가, 브로트의 비서 에스더 호페(Esther Hoffe, 1906~2007ㆍ왼쪽)였다. 둘은 연인으로 알려졌을 만큼 친밀한 사이였다. 브로트는 숨지면서 카프카와 자신의 원고 일체를 호페에게 전했고, 원고 대부분을 간직한 호페는 2007년 9월 2일 숨지면서 자신의 딸들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호페와 그의 딸들은 원고 일체를 브로트가 유증(遺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국립도서관은 2009년 카프카 원고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알려진 것처럼, 브로트가 숨지면서 카프카의 원고를 도서관에 전달하라고 했다는 유언장은 없다. 만일 구두로 한 유언이라면 임종했던 호페가 가장 잘 알 테지만, 도서관측은 호페의 생전에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호페는 88년 ‘심판’의 카프카 친필 원고를 경매에 내놔 200만 달러에 판 일도 있었다. 브로트의 평소 뜻이 그러했다는 증언이 있다지만 그 사실이 도서관의 원고 소유권을 법적으로 보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텔아비브 법원은 2012년 10월 도서관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막스 브로트의 바람대로 카프카의 원고는 개인이 아닌 모두의 소유가 돼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당시 외신은 전했다.

카프카의 원고가 모두의 소유여야 한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당시 외신들은 그의 작품(문학)을 누릴 권리가 모두에게 있다는 말과 막대한 재산가치를 지닌 친필원고의 소유권이 모두에게 있다는 말은 다르다는 사실, 또 그 ‘모두’가 왜 이스라엘국립도서관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의문들이 호페의 소유권 논리를 보강하지는 못한다. 어쨌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또 소송에서 패소한 지금도 호페(와 그의 딸들)는 공공의 자산을 부당하게 편취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이후로도 내내 모욕을 당하게 생겼다. 그건 부당한 일이다. 아울러 우리는, 카프카의 ‘지음(知音)’으로 명예를 높인 브로트는 왜 숨지기 전 원고를 ‘모두의 소유’로 공개하지 않았는지도 따져 물어야 한다. 브로트가 숨진 것은 이스라엘이 건국(1948년)한 지 20년 뒤였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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