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공략할 수 있다면 반발은 자연히 없어진다…형세를 살피지 않으면 너그러울지 혹은 엄격할지 착오가 생기는 법이다.’(能攻心反側自消: 능공심반측자소…不審勢寬嚴皆誤: 불심세관엄개오)
중국 특파원 시절이던 2008년5월 쓰촨성 대지진 취재를 위해 청두를 방문했다. 당시 찾은 곳이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 사당인 무후사(武侯祠)였다. 그곳에 걸려 있는 한 글귀에 눈길이 갔다.‘마음을 공략하는 일’과 ‘형세를 살피는 일’의 중요성이 담긴 대련(對聯)이었다.
‘공심’(攻心: 마음을 공략하는 일)은 중국 병법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상대를 마음으로 설득시켜 끌어안는다면 자신의 뜻을 이루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그것 만으론 부족하다. 여기에 세(勢)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세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의미한다. 그런 세를 세밀히 따져 상대를 너그럽게 대할지, 아니면 혹독히 다룰지를 알아야 비로소 공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나와 주변 상황 전체를 아우르는 최적의 선택과 행동이 마음을 얻는 법이다.
중국 전승절(3일)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2일 방중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에 대한 공심과 동북아 외교지형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주도적인 외교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요구된다. 미국의 동맹국 정상 중 유일하게 톈안먼 성루에 올라 중국 군사 퍼레이드(열병식)를 참관하는 것은 긴밀해진 한중관계의 현주소이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열병식에서 박 대통령을 보며 한중의 협력 도모가 한반도 안보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인식하도록 중국의 마음을 얻는 선제적 대응인 셈이다. 반대로 미국 등 동맹국들에 대한 부담은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변화하는 동북아 외교 지형에서 미중ㆍ중일 관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3일 톈안먼 성루에서 당당하고 진중한 미소를 보였으면 좋겠다. 중국에 너무 다가서 미국에 오해받지 않을까 하는 어정쩡한 표정은 곤란하다. 수세에 몰린 북한의 최룡해에게 먼저 포용적인 악수를 청해도 좋다. 그곳이 어디든, 누구든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철저한 표정관리로 자존감을 뚜렷이 각인시켜야 한다. 중국의 마음을 얻는 것은 물론 미국, 일본, 북한까지도 한국의 존재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판을 만드는 세(勢)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중 목적이 정치와 외교, 안보에만 집중될 이유는 없다.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을 보면 양국 간 경제관계가 더 돈독해 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이에 대한 양국 의회의 비준처리를 독려하고,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서의 영향력 확대 요구를 적극 펼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 경제계는 세 판단에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청와대는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이라지만, 5대 경제단체장을 제외하면 대기업 오너들은 모두 빠졌다. 좋게 말하면 이미 개별 사업채널을 구축해 놓았다는 방증이고, 아니면 중국 정부에게 실질적으로 더 얻어낼 게 없다는 자만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의 산업지형 변화에 맞춰 새롭게 주목받는 바이오ㆍ의료ㆍ환경ㆍ정보기술 등 신시장을 개척하려는 중소ㆍ중견기업들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는 것. ‘신창타이’로 대변되는 중국 시장 변화에 맞춰 빠르게 우리기업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내수 확대로 가는 중국시장 변화에 맞춰 세를 파악해 앞으로 중국 기업과 손잡고 어떤 협력의 사업모델을 만들어가느냐가 당면 과제이다.
중국 전승절 열병식 준비는 끝났다. 악명 높은 베이징의 스모그 요인을 줄여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하는‘열병식 블루’만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면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장학만 산업부 선임기자 trend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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