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본고장 독일에서 탄생한 포르쉐는 ‘꿈의 스포츠카’로 불립니다. 유선형으로 쫙 빠진 차체가 뿜어내는 폭발적 성능은 운전대를 잡아 본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입니다. 포르쉐는 다소 늦은 1951년 모터스포츠에 데뷔했지만 이후 세계 적인 대회에서 3만번 이상 우승하며 독보적인 스포츠카로 군림하고 있죠.
'2015 포르쉐 드라이빙 익스피어리언스(PDE)’가 열린 지난달 21일 강원 인제군의 서킷 ‘인제 스피디움’은 으르렁거리는 포르쉐 배기음으로 들끓었습니다. 스포츠카의 아이콘 ‘911’ 시리즈부터 엔진이 뒷바퀴 앞에 장착된 미드십 스포츠카 ‘박스터’와 ‘카이맨’, 4도어 스포츠세단 ‘파나메라’와 스포츠카의 DNA를 이어 받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마칸’까지 포르쉐 차들이 총출동했습니다.
맨 먼저 경험한 차는 카이맨 GTS였습니다. '그란 투리스모 스포츠(Gran Turismo Sports)’의 이니셜인 GTS가 붙은 차들은 같은 차종 중에서도 성능이 뛰어납니다. 포르쉐는 1963년 전설적 스포츠카 ‘카레라 GTS’ 이후 퍼포먼스를 강조한 GTS 모델을 꾸준히 내놓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어인 그란 투리스모는 영어로 ‘그랜드 투어러(Grand Tourer)’ 입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그란 투리스모를 먼 거리를 달리는 고성능차를 의미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BMW GT나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등이 대표적입니다.
소형차도 버튼 시동이 대중화된 시대인데 포르쉐는 아직도 키를 넣고 돌려야 시동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익히 들었던 것처럼 시동키는 스티어링휠 왼쪽에 붙어 있습니다.
과거 세계 3대 모터스포츠대회인 프랑스 ‘르망24’에 출전한 차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기 위해 모두 시동키가 왼쪽에 있었다고 합니다. 왼손으로 키를 꽂아 돌리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기어를 조작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1초라도 줄이기 위해 안전띠를 매지 않고 출발한 레이서가 1969년 경기 중 사망하며 이런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포르쉐는 모터스포츠에 기반한 브랜드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아직도 모든 차종에 스티어링휠 왼쪽 시동키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카이맨 GTS의 시동키를 돌리자 묵직하면서 날카로운 배기음이 차를 감쌌습니다. 기어노브 옆 머플러가 그려진 버튼을 누르자 배기음이 더 커지며 맹렬해졌습니다. 이런 가변 배기음 버튼은 포르쉐 중에서도 정통 스포츠카에만 달려 있다고 합니다.
국산 준준형 세단보다 가벼운 공차중량에 6기통 3.4ℓ 엔진이 들어간 카이맨 GTS의 성능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최고출력 340마력에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 시간)이 4.6초입니다. 인제 스피디움 서킷은 총 길이 약 4㎞ 중 직선구간이 1㎞가 채 안되지만 속도계가 시속 200㎞까지 올라가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U자에 가까운 급커브 구간도 90㎞ 이상으로 빠르게 빠져나갔습니다. 차는 바퀴 4개를 지면에 붙이고 안정적으로 커브를 돌았지만 몸은 좌우로 쏠렸습니다.
이날 나온 스포츠카들 중 가장 비싼 911 타르가 4 GTS는 모델명이 말해 주듯 상시 사륜구동입니다. 급커브 구간에서는 사륜구동의 안전성이 빛났습니다. 스포츠세단 파나메라의 경우 터보 모델의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가속이 압권이었지만 서킷 경험이 일천한 입장이라 4륜 구동이 좀 더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배기음은 전체 차종 중 911 카레라 4 GTS가 일품이었습니다.
SUV인 마칸도 포르쉐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특히 마칸 터보는 최고출력 400마력에 토크 56.1㎏·m, 제로백 4.8초로 스포츠카와 대등한 수준입니다. 이 차는 무시무시하게 잘 달렸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놀라울 정도로 원하는 위치에 딱 멈췄습니다.
마칸 모델들은 고속주행시 지면과 가깝도록 차고를 낮추는 기능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행 중에도 버튼을 누르면 앞뒤 서스펜션에서 에어가 빠지며 10㎜ 정도 차체가 내려 앉는 방식입니다. 동시에 서스펜션은 한층 단단해져 지면에 바짝 붙는 느낌이 몸으로 전해졌습니다.
프로 레이서들은 구별하겠지만 솔직히 911시리즈나 박스터, 카이맨, 마칸까지 어느 놈이나 퍼포먼스는 하나 같이 대단했습니다. 짜릿한 드라이빙을 경험하면 반드시 갖고 싶어진다는 ‘포르쉐 바이러스’란 게 허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자동변속기 차량에서 할 일이 없는 왼쪽 발이 머쓱했습니다. 포르쉐 차들의 풋레스트(footrest)가 전체적으로 좁은 듯 했고 특히 스포츠카 계열의 풋레스트는 국산차보다 불편했습니다.
포르쉐 코리아는 인제 스피디움의 피트(Pit) 하나를 1년간 임대했습니다. 고객에게 제대로 달리는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피트는 서킷 내 차를 정비하고 선수들이 대기하는 공간이라 야구장으로 치면 덕아웃 정도 됩니다.
포르쉐 피트에 올해 르망24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919 하이브리드’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엔진 등 주요 부품이 없는 껍데기이지만 르망24에서 17번째 우승을 차지했다는 포르쉐의 자부심이 잔뜩 묻어 나왔습니다.
포르쉐는 1951년 르망24에 처음 출전해 클래스 우승이란 쾌거를 올렸고, 1970년 917K로 첫번째 종합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1998년까지 16회 우승을 휩쓸며 스포츠카의 최강자로 등극했습니다.
“적수가 없다”며 르망24를 떠났던 포르쉐는 지난해 복귀전을 치렀고, 마지막 우승 뒤 17년 만인 올해 17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뒤를 쫓는 아우디(13번)나 페라리(9회)와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르망24 우승이 대단한 것은 사실입니다. 1923년 시작돼 매년 5월이나 6월에 열리는 이 대회는 24시간 동안 펼쳐지는 가장 오래된 내구 레이스입니다. 종합우승은 주행성능과 내구성이 당대 최고라는 것을 동시에 보증합니다.
이 경주는 한 바퀴가 13.629㎞인 르망시의 ‘사르트 서킷’을 가장 많이 달려야 우승할 수 있습니다. 사르트 서킷의 직선구간은 벤틀리의 모델명으로도 잘 알려진 ‘뮬산 스트레이트’입니다. 주유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포르쉐도 르망24에 복귀한 지난해부터 연료 효율성이 좋은 하이브리드차를 투입했습니다.
올해 우승한 919 하이브리드는 2.0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모터의 결합으로 1,000마력을 발휘하는 괴물인데 중량은 르망24 최소 규정인 870㎏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차가 24시간 동안 무려 5,383㎞(395바퀴)를 달렸습니다. 평균속도가 시속 220㎞였으니 차는 물론 3인 1조로 달리는 레이서들에게도 혹독하기 그지 없는 경주입니다.
이제는 브랜드 자체가 스포츠카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은 포르쉐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900대 많은 2,120대가 팔렸습니다. 증가율이 72.9%로, 푸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습니다.
국내 최대 딜러사인 스투트가르트스포츠카(SSCL) 노동조합이 사측의 노조 임원 해고로 이달 초 전면파업에 돌입하는 변수가 생겼지만 7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2,464대라 지난해 연간 기록(2,587대)을 뛰어 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포르쉐가 명차인 것은 분명합니다. 최근 한 신문이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을 정도로 ‘드림카’입니다.
원래 꿈은 이루기 힘든 것이라 그런지 가격은 매우 비쌉니다. 가장 저렴한 마칸이 7,560만원, 파나메라는 1억2,000만원대부터 시작해 터보 모델은 2억3,000만원에 이릅니다. 911이 붙은 차는 죄다 1억5,000만원이 넘죠. 여기에 옵션을 이것저것 추가하면 수천 만원이 더 올라갑니다.
우리나라에서 포르쉐는 법인 구매 비율이 70% 입니다. 개인이 소유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습니다. 서민들에게 포르쉐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것은 여전히 꿈 같은 얘기입니다. 꿈은 꾸지만 갖기 힘든 차 포르쉐는 역시 ‘드림카’입니다.
글ㆍ사진=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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