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첫 작품 전시… 올해 8번째
건축자재 부식 흔적 모은 신작 내놔
작년 서울·제주에 미술관 5곳 열어
“왜 (수집가로 만족하지 않고)직접 작품을 만드느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나도 사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작업이 하고 싶으면 해야죠.”
김창일(64) 아라리오 회장은 2003년부터 2년마다‘씨킴’(Ci Kim)이란 작가가 되어 개인전을 연다. 김 회장은 충남 천안시에서 시외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이 입주한 ‘아라리오 스몰시티’를 운영하는 사업가이자 천안ㆍ서울ㆍ제주ㆍ상하이에 미술관과 화랑을 보유한 미술 수집가다. 하지만 그의 예술을 향한 욕망은 수집으로 끝나지 않았다. 매일 드로잉을 하고 스티로폼, 합판 등 버려진 건축자재를 모아 작품을 만든다.
지난달 31일 여덟 번째 개인전 ‘더 로드 이스 롱’의 개막에 앞서 충남 천안시 선부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씨킴’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어려워했고 부끄러워했다. 고민 끝에 내놓은 그의 ‘미술을 하는 이유’는 이렇다. “어렸을 때 자폐 증상이 있었고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성장하면서 사업을 하다 보니 나아졌지만 여전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도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사람 모습처럼 보여서 주워 와 자각상을 만들곤 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합판과 철판, 벽돌을 겹쳐 야외에 쌓아놓은 후 이들이 자연스럽게 부식하면서 나타나는 흔적을 신작으로 내놨다. 그의 ‘자연스러운 퇴색’에 대한 열망은 지난해 서울 원서동 옛 공간 사옥이나 제주 시내 옛 건물 4채를 거의 수리하지 않고 폐허가 된 모습 그대로 미술관으로 만들어 개장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 자체가 결국 미술 작가 ‘씨킴’의 작품인 셈이다.
김 회장은 1978년 서울 인사동에서 남농 허건과 청전 이상범의 동양화를 구매하면서 미술과 만나, 사업가로 성공한 후 1990년대부터는 “내 백화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최첨단의 미술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현대미술 작품을 모았다. 작품을 수집하는 스타일도 ‘예술적’이다. 그는 “작가의 이름을 보지 않고 작품 자체에서 느낌이 오면 산다”고 말했다. 지금은 ‘젊은 영국 예술가’의 대표로 추앙 받는 데미안 허스트가 세계적 명성을 얻기 전인 2000년대 초부터 주목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그다.
김 회장의 작품활동은 언뜻 부유한 사업가의 사치스런 취미처럼 보인다. 전문 미술교육을 받은 경험도 없이 화랑을 운영하는 사람이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니 뒷말도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회장은 “지난해 미술관 다섯 곳을 열고 나니 그런 오해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절대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작가로서의 저를 위해 세운 원칙입니다. 제 작품을 팔면 분명 누군가가 살 텐데 그건 씨킴의 미술작품을 사는 게 아니라 사업가인 저를 보고 구매하는 게 뻔하잖아요. 그냥 죽을 때까지 안고 가렵니다.”
천안=글ㆍ사진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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