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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마지막 확성기 방송

입력
2015.09.0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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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15일 0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40년 가까이 해온 남북 확성기 방송을 동시에 멈추기로 한 날이다. 먼저 북측에서 고별 방송을 했다. “전방에 나와있는 국군 장교들과 사병 여러분. 군사분계선상의 역사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핏줄과 언어도 하나인 우리 민족은 더 이상 갈라져 살 수 없으며 분열의 비극은 하루 빨리 끝장내야 합니다. (중략) 통일의 그날 우리 만납시다. 기쁨과 감격에 울고 웃으며 서로 얼싸 안읍시다.” 이어 남측의 마지막 대북방송이 흘러나왔다. “1962년부터 42년간 계속해온 우리 ‘자유의 소리’ 방송이 오늘 부로 북한의 확성기 방송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된 역사적 사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중략) 우리들이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할 일은 남북간 합의사항을 착실하게 이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 방송을 들어준 인민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무궁한 행운을 빕니다.”

▦ 고별 방송에 이어 0시 정각이 되자 경적과 동시에 모든 초소의 불이 꺼졌다. 우리 군 자체 지침에 따라 248km에 걸친 남방한계선 철책의 경계등을 1분 동안 소등한 것이다. 귓전을 때리던 남북 확성기 소음도 사라졌다. 철책선에는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잠시 후 야간 경계등이 다시 켜졌고, 병사들은 경계근무에 나섰다. 확성기 방송이 없는 첫 근무였다. 이날을 떠올린 장병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가다’ㆍ서재철)

▦ 북한의 지뢰 도발로 영원히 멈춘 줄 알았던 대북 확성기 방송이 11년 만에 재개됐다. 이번에는 음악 방송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북한 젊은 군인들의 남한에 대한 호기심을 반영해 아이유, 빅뱅 등의 K팝을 많이 틀었다. 남한 가요는 이전에도 북한군에게 인기였다.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떼창을 했고, 한 구절씩 따라 하는 프로그램을 들으며 노래를 배웠다고 귀순자들은 전한다.

▦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대북 확성기 방송의 위력이 확인됐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북한이 협상에 매달린 걸 보면 타당성이 있지만 왜 그리 민감한지에 대한 명쾌한 해석은 없다. 북한병사들에 미치는 심리적 효과를 거론하지만 최고지도자에 대한 모욕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체제의 특수성 탓이라는 견해도 많다. 남북 합의를 확성기 재개의 승리로만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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