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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념 관련 조사에 대한 단상

입력
2015.09.0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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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내외 정치학계에서 이념의 정의나 내용, 또는 연구방법에 대하여 완전한 합의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특히 2012년 한 대선주자가 자신은 경제와 관련해서 진보이고 안보에 대해서 보수인데 어떻게 진보와 보수로 자신을 구분할 수 있냐고 했던 말은 한국사회에서 이념에 대한 무지나 오해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프레임전쟁’의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 미국 버클리대 언어학과 교수가 중도라는 용어는 은유에 불과하고 중도는 어떤 문제에 보수적이고 또 다른 영역에서는 진보적이기 때문에 중도에게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란 없다고 한 말을 금과옥조같이 여기는 행위도 사실 이념을 공부하고 선거를 분석하는 정치학자들에게는 심각한 오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정치학계에서는 이념 또는 좌우(진보와 보수)라는 용어가 개인의 세계관 또는 신념 체계뿐 아니라 정치적인 대화를 잘 대변하고 요약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좌우의 구분은 포괄적인 동시에 개인이나 정당 사이의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이해나 분석은 물론 갈등과 대립을 공간적인 맥락에서 매우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한마디로 좌우의 구분은 개인의 세계관과 이념적 성향을 응축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이다. 따라서 중도란 말이 은유에 그친다는 레이코프의 주장은 함축적 표상이라는 정치학 이론의 연장에 불과하다.

좌우의 개념은 개인에 따라 서로 같지 않은 의미와 내용을 가질 수 있고 다양한 정치적 현안에 서로 다른 이해와 반응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정치학자는 설문조사를 통하여 0(진보)부터 5(중도)를 지나 10(보수) 가운데 개인이 자신의 이념적 위치를 스스로 응답하게 한 설문조사를 믿지 않고 그 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부정하기도 한다. 만약 설문조사의 한계만 강조한다면 어느 설문조사도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이를 분석한 동서고금의 무수한 연구도 휴지조각으로 변하게 된다.

또한 정치학계에서는 한 개인이 세부적인 정책과 현안마다 서로 다른 입장, 심지어 상충하는 입장마저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가령 0(진보)부터 10(보수) 사이에 ‘3’을 선택해 스스로 진보 쪽이라고 분류한 개인도 경제와 관련해서 진보적인 입장을 갖는 동시에 다른 영역에서는 보수적인 정책을 선호할 수 있다. 이는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설문조사와 그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는지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1(전혀 못한다)부터 4(매우 잘한다) 가운데 ‘4’를 선택한 개인이 안보영역에서는 90점을, 경제영역에서는 10점을 각각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념의 좌우 개념은 프랑스혁명에서 나왔다. 앙시앙레짐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의회의 왼쪽에 앉았는데 왕에 충성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그 반대편에 앉았다.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반대했다. 그 이후 국가의 경제 개입에 대한 찬반은 좌우를 구분하는 핵심적인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바뀌고 사회가 복잡해져서 경제 정치 여성 사회 외교 안보 교육 복지 환경 등 다양한 정책 영역에서 개인이 국가의 역할에 대해 하나의 입장을 일관적으로 가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진보나 보수라는 구분이 1차원적인 수평선 위에 놓인 것이라면 각각의 세부적인 정책 영역은 이를 뛰어 넘는 다차원의 매우 복합적인 선택 대상이다. 진보란 일반적으로 사회적 영역에서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는데 찬성하고 경제의 영역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늘리는데 찬성한다고 정의된다. 보수는 이와 반대이다. 다시 말해 진보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보다는 국가의 경제 개입을 선호하나 국가의 권위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한다. 따라서 개인의 이념적 위치와 각 정책 현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서로 보완적이고 유기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현재까지 축적된 정치학적인 연구 성과에 기초한 접근법이라고 하겠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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