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 5명 "백의종씨 누명, 조합장이 감방에서 다 말해"
조합장 유씨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말 한 적도 없다"
인천지검 강력부는 지난해 4월 10년 전 단순 변사사건으로 마무리된 청부살인 사건을 재소자 제보로 재수사해 밝혀냈다. 한 수감자가 교도소 안에서 동료들이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는 제보가 결정적이었다. 이처럼 수감자들은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다른 동료들에게 진실을 쉽게 털어 놓는다. 유능한 검사들도 이 같은 심리를 알기 때문에 구치소나 교도소에 ‘첩자’ 재소자를 심어 두고 범죄 정보를 캐오곤 한다.
그런데 백의종 씨에게 뇌물 7,000만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재건축 조합장 유씨와 서울 영등포구치소(현 남부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검찰 수사내용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수소문 끝에 어렵게 그들을 차례대로 만났다.
이들은 한결 같이 백의종 씨가 누명을 썼다고 말했다. 유씨가 검찰에서는 허위진술을, 법원에서 위증을 했다는 것인데, 한두 명도 아닌 5명이 당시 구치소에서 유씨와 나눴던 대화내용을 상세히 전해줬다.
유씨가 수감자들에게 말했다는 요지는 이렇다. 백의종 씨가 자신에게 빌려간 수표 3,000만원을 제때 갚지 않자 이자까지 포함해 4,000만원을 받을 생각으로 종이에 ‘백40’이라는 메모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판결문을 봐도 유씨가 백씨에게 현금으로 줬다는 4,000만원의 뇌물수수를 뒷받침하는 내용은 유씨 진술과 메모뿐이다. 사용처 등 금융거래 내역은 없다고 돼있다.
하지만 이 메모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유씨가 4,000만원을 백씨에게 뇌물로 줬다는 증거로 활용됐다. 요컨대 유씨는 대여금으로 결론 난 수표 3,000만원도 뇌물로 줬다고 진술했고, 메모를 근거로 실제 준 적도 없는 현금 4,000만원도 백씨에게 뇌물로 줬다고 검찰과 법정에서 진술했다는 게 수감자들이 전해준 내용이었다. 사실이라면 백씨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셈이다.
8월 4일 기자가 서울시내에서 만난 A씨는 한 시간 동안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A씨는 백의종 씨의 항소심 선고를 앞둔 2011년 6~7월 서울 남부구치소 접견 대기실에서 역시 수감 중이었던 유씨를 4, 5차례 만났다고 한다. 다음은 A씨가 유씨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다. “검찰이 감형해 주고 기소도 하지 않기로 약속해서 백씨에게 빌려준 돈을 뇌물이라고 진술했다. 또 ‘밖으로 내보내 준다’고 해서 거짓진술을 했다.” 재판기록을 보면 실제로 유씨는 2009년 8월13일~10월14일, 2010년 2월8일~3월22일 등 두 차례나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조사를 이유로 자주 검찰청으로 출정을 갔다고 한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구치소 병동에 있어도 웬만한 ‘빽’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다. 유씨 같은 케이스는 본 적이 없어 수감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당시 A씨에게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고 한다. “다음 재판 때는 빌려준 돈 3,000만원에 이자까지 합해서 4,000만원 받으려고 ‘백40’이라고 메모한 것이라고 사실대로 진술하겠다.” 하지만 유씨는 법정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A씨에 따르면 유씨는 백씨 변호사가 법정에서 자신을 신문할 때 꼬치꼬치 캐물어서 기분 나빠서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고 한다. 실제로 백씨 변호사는 법정에 나온 유씨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이어갔고 유씨는 변호사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등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씨는 당시 횡령과 뇌물 등 각종 개인비리로 징역 3년 6월을 선고 받았으며 추가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기자는 역시 유씨와 함께 수감생활 했다는 B씨를 지난 7월 27일 만났다. B씨에 따르면 2010년 12월 B씨를 남부구치소 접견 대기실에서 만난 유씨는 “백씨가 빌려간 3,000만원을 갚았으면 왜 이런 일이 생겼겠나. 나도 후회한다. 기회 있으면 법정에서 사실대로 말해서 백씨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8월 7일 기자와 만난 C씨도 비슷한 취지로 이야기했다. C씨는 “구치소에서 만난 유씨가 ‘백씨에게 법정에서 부인하라고 전해달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시 백씨와 같은 감방에 있었던 C씨는 접견 대기실에서 다른 감방에 있던 유씨를 만나 이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유씨와 같은 감방에서 생활했다는 D씨는 사실확인서를 통해 유씨에게 들었던 말을 이렇게 정리했다. “백의종에게 돈 받을 게 있었는데 검찰에서 보석을 해준다고 해서 뇌물로 준 것처럼 거짓으로 불었다. 생사람 잡은 것 같아 미치겠다”고 유씨가 말했다는 것이다. 역시 남부구치소에서 유씨와 같이 있었던 E씨도 앞선 4명과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들 5명의 말이 사실이라면 유씨는 진짜로 생사람을 잡은 셈이다.
수감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느냐고 유씨에게 물었다. 유씨는 전화통화에서 “그 사람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 그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 5명은 유씨에게 듣지도 않은 말을 꾸며냈단 말인가. 이들이 백씨와 특수관계가 있어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따져봤다.
일단 5명 모두 유씨가 수감생활을 했던 기간에 같은 구치소에 머물렀던 사실이 확인됐다. 또 수감되기 전에 백씨와 알고 지낸 사이가 전혀 아니었고 그들 5명이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혹시 백씨에게 유리한 말을 해주는 대가로 백씨와 돈 거래가 있었는지도 알아봤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백씨와 이들 수감자들간에 뚜렷한 이해관계를 볼 수 없었다는 뜻이다.
유씨와 나눴던 대화내용에 대해 공증서까지 작성한 A씨는 “백의종 씨가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것 같아 나서게 됐다. 법적으로 문제될 수도 있는데 듣지도 않은 이야기를 내가 왜 말하겠나”라고 말했다.
이들 5명의 주장이 틀림없다고 해도 당시 유씨가 수감자들에게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B씨는 “수감생활을 하다 보면 매일 얼굴을 마주친다. 그래서 소소한 이야기까지 진솔하게 다 털어놓게 된다. 서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고 전했다.
유씨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5명은 백의종 씨 사건과 관련해 나중에 검찰과 법원에 불려가더라도 유씨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뇌물수수 시의원, 그는 사법 피해자인가’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는 ‘사라진 뇌물 창고’란 주제로 검은 돈이 보관됐다는 장소를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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