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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남친의 잦은 ‘외모 디스’에 열 받아요

입력
2015.09.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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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물 다섯 대학생입니다. 지금 8학기째고요. 사귄 지 6개월쯤 되어가는 남자친구와는 CC사이입니다. 같은 수업을 듣다가 친해졌고 같이 시험공부 하다가 그만 눈이 맞아 사귀게 되었죠. 거의 매일 보는 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편안한 모습도 서로에게 보여주게 됐습니다. 늦잠 자서 쌩얼로 학교에 오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엎드려서 자다가 침흘리는 모습도 보여줬네요. 문제는 그런 편한 모습에 대한 남자친구의 반응입니다. 처음에는 별 말 없는 것 같더니 언제부터인가 '그래도 그렇지 쌩얼로 다니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취업해도 그러고 다닐거야?'라든가 '다들 스키니진 잘 입던데 넌 허벅지 때문에 못 입겠다. 지금부터 관리 좀 해봐'라는 식으로 제 외모에 대해 디스를 합니다. 처음엔 편한 사이니까 이런 식으로 걱정해주는 건가 싶었는데 요즘 들어 점점 더 자주 제 외모나 옷차림에 대해 지적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상대가 좋으면 그 사람의 어떤 모습도 다 예뻐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항의해야 좋을까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한 장면.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한 장면.

A 정말 속상했겠군요.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지적은 그 어떤 사람에게 듣더라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이야기죠. 가끔은 외모에 대해 칭찬이랍시고 하는 말도 듣는 사람 입장에선 썩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을 만큼 예민한 것이 이런 류의 대화이기에, 서로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남자친구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가 어떤 기분이 들까?'를 생각했어야 했죠. 네, 적어도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기죠. 왜 그는 당신을 좋아한다며 공개적으로 연애를 하고 있는 상황이면서도 당신의 기분이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걸까요? 왜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당신에게 거리낌없이 외모를 지적하는 이야기를 꺼냈던 걸까요? 그건 어쩌면 당신이 처음에 짐작했던 것처럼 그저 편한 사이니까 걱정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내 여자친구가 너무 외모에 관심이 없어서 혹시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별로 안 좋은 평가를 내릴까봐, 당신이 외모 때문에 차별을 당하기라도 할까봐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우리 사회는 남들의 외모에 대해서 대놓고 평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차별하는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이다 보니 당신의 꾸미지 않고 좀 관리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그런 걱정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발언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안 좋게 보일까봐 걱정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말의 속뜻은 '내가 보기에 별로이고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너를 별로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어'라는 것 아닌가요? 다른 사람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내 맘에 안들고 내 눈에 거슬리는 거죠. 정말로 당신의 평판이 걱정될 정도로 당신을 맘 속 깊이 케어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마음을 그런 표현으로 전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같이 운동을 하자고 제안하거나, 함께 드러그스토어에 가서 립밤 하나라도 골라주고 싶은 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표현방식이겠죠. 상대방의 외모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난하고 타박하는 일이 애정표현의 한 방법이라면, 저는 그런 애정 안주고 안받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사귀는 사이라면 상대방의 어떤 모습도 다 예뻐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당신의 질문이 존재하기 이전에, '어떤 사이에서라도 외모에 대해 부정적인 지적을 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옳지 않다'라는 명제가 먼저 존재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는 거 아냐?"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안 꾸며도 예뻐 보여야 하는거 아냐?" 두 남녀의 생각차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는 거 아냐?"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안 꾸며도 예뻐 보여야 하는거 아냐?" 두 남녀의 생각차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네, 당신은 그에게 항의하시는 게 맞습니다. '좋아하면 다 예뻐 보여야 하는 것 아니야?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라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외모에 대해 이런 식으로 지적하지 않았으면 해.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무슨 말이든 다 해도 되는 건 아니야'라고 말이죠. 부당한 지적에 항의하고 당신이 생각하는 불쾌함에 대해 또렷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는 걱정이나 케어라는 핑계로 당신에게 자주 상처 주는 말을 할 테니까요.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로 그의 사랑을 재단하며 '정말 좋아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건가?'라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단, 그의 매너없음에 주목하고 '나에게 매너를 지켜달라'라고 요구하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또렷하게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 단지 이 문제뿐 아니라 다른 대화나 의견조율문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땐, 결국 당신이 결정을 내려야 하겠죠.

하지만 마지막으로 당부 한 마디. '사랑하면 무슨 모습이든 다 예뻐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엔 저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뻔히 보이는 그 사람의 단점에도 눈을 감아주게 되고, 그저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사랑의 한 단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이니까 안 꾸민 모습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은 마냥 옳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사랑하는 사이니까 더 예쁜 모습, 더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역시 사랑의 한 단면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안 꾸며도 예뻐 보이는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 같네요. 부디, 한 걸음씩 서로를 향하길 바랍니다.

연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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