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님께. 저는 아내와 세 살배기 딸과 함께 둘째를 기다리던 평범한 아빠였습니다. (중략)병원에 달려갔습니다. 아이의 몸은 아직도 따뜻한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충격으로 몸 속의 둘째마저 유산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충북 청주에서 어린이집에 다니던 김세림 양이 통학차량에 치여 숨졌다. 아빠는 청와대에 편지를 썼다. 올 1월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생겼고, 7월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시행 이틀 전인 28일 경기 평택시에서 일어난 사고는 어린이 통학차량 사고의 모든 기본적 취약점을 망라하고 있다.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주택가 일방통행도로였다. 하차한 어린이가 통학버스 앞쪽으로 돌아 건너갔다. 보호자 동승하여 맨 나중에 타고 맨 먼저 내려 안전확인을 하지 않았다. 문제의 미술학원 버스는 통학버스 신고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 중 어느 하나에라도 올 초 만들어진 세림이법의 취지가 제대로 살려졌다면 한 아이가 그렇게 생명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 어린이 통학차량을 대상으로 ‘천사의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스펀지로 제작돼 차량 문에 부착하게끔 되어있다. 차량 문을 열면 뒤쪽을 향해 ‘어린이가 내려요. STOP’이라고 씌어진 간판이 저절로 돌출되도록 고안된 것이다. 선진국에서 의무화하고 있는 ‘STOP 간판’이나 ‘Safe-bar(안전 막대)’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듯하다. 이미 2008년부터 전국 1만대 이상의 차량에 기증하여 부착하고 있다는데 제대로 눈에 띄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적극적인 홍보로 많은 차량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무엇보다 ‘세림이법’의 철저한 시행이 필요하다. 이전에 권고나 신고사항이었던 것들 을 의무사항으로 개정하는 데 2년 가까이 걸렸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유예기간을 6개월~2년씩 두었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유치원이나 학원 등에서 사용하는 어린이 통학차량 중에는 15인승 이하가 많은데 이들에 대해 2년간 의무를 유예하고 있다. 법 개정하는데 2년, 시행하는데 2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이를 이유로 당국은 관리ㆍ감독ㆍ단속에 손을 놓고 있는 모양이다. 세림이 아빠의 편지에 대해 추가 답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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