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 유럽에서 만난 한 외국인과 가벼운 입씨름을 한적이 있다. 삼성전자가 한국 회사라고 말하자 외국인은 ‘엄연한 일본 회사를 한국 회사 취급해서야 되겠냐’고 했다. 한국에서 온 사람이 하는 말을 왜 믿지 않냐고 항변하니까 그제서야 상대방은 마지못해 인정을 했다.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가 여전히 평가절하돼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인식이 이럴진대 한국을 상징하는 관광상품이 있기는 한 것일까라는 의문도 함께 생겼다.
지난 4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가 개봉했을 때 말들이 많았다. 서울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난이 넘쳤다. 경복궁 남대문 등 서울의 상징물이 등장하지 않아 관광 증대 효과가 있겠냐는 반응들이 많았다. 도쿄인지 홍콩인지 구분하지 못할 외국인이 대다수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봄 마포대교를 차단하면서까지 촬영한 영화인데 서울을 야박하게 다뤘다는 실망 섞인 비난이었다. 이 때문에 ‘외국영상물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제도’에 따라 ‘어벤져스2’ 제작사인 미국 월트디즈니에 한국에서 쓰고 간 87억원의 30%에 해당하는 26억원(당초 예상 환급액은 39억원)을 최근 환급해준 것에 대해서도 적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벤져스2’만 탓할 일일까?
‘어벤져스2’의 일부를 서울에서 촬영한다고 했을 때 반갑기는 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국가 브랜드 상승으로 2조원 가량의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한국관광공사의 과도한 예측을 들었을 때는 소도 웃고 갈 얘기란 생각부터 들었다. 30억원 가량을 주고 2조원의 혜택을 입는다면 남아도 너무 남는 장사 아닌가.
‘어벤져스2’ 제작진이 첨단 기술을 지닌 한국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을 때 과연 어떻게 그 모습을 묘사할 지도 회의가 들었다. 장쾌한 볼거리에 초점을 맞출 영화인데 외국인들 눈에는 낯설기만 한 한국의 전통 건축물이 등장할 일도 없으리라 예감했다. ‘어벤져스2’가 묘사한 서울의 삭막한 풍경은 그래도 정직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무뚝뚝한 대교들, 간판들이 아우성치듯 걸려있는 건물들은 지금 서울이 품고 있는 모습이다.
고궁의 고즈넉함, 남대문시장의 활기, 이태원의 다국적 면모, 서촌 골목길이 품고 있는 정취 등은 애초 ‘어벤져스2’와는 무관한 서울의 잠재력 큰 관광자원이다. 설령 이곳이 스치듯 영화 속에 등장한다고 기억에 둘 외국인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어벤져스2’ 촬영 유치 때 거론된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영화처럼 이야기와 등장인물이 풍경 속으로 스미는 예술영화라야 서울이 간직한 가치들이 카메라에 제대로 담길 만하다.
‘어벤져스2’의 서울 촬영과 달리 영국 런던이나 독일 베를린, 체코 프라하 등 로케이션 유치에 앞서 나가는 국가나 도시는 영화 촬영에 따른 관광 증대 효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베를린에선 파리나 런던 등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프라하에선 베를린이나 파리 등을 묘사한 영화를 촬영하기도 한다. ‘어벤져스2’는 런던에서 상당부분 촬영을 했으나 런던으로 묘사되는 장면은 없다. 영화 촬영 유치에 따른 고용 효과 등 직접적인 경제 효과를 더 노리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형 영화의 지속적인 촬영 유치는 대형 스튜디오가 있어야 가능하고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런던은 파인우드스튜디오를, 베를린은 바벨스베르크스튜디오를, 프라하는 바란도프스튜디오를 각각 지척에 두고 있다. 서울이 로케이션 명소로 각광 받고 싶다면 거대한 실내 촬영 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이에 대한 계획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문제는 26억원 환급도 아니고, ‘어벤져스2’의 서울 묘사도 아니다. 장기적 안목 없이 관광 증대 효과만 운운하는 정책 당국의 한 건 주의가 ‘어벤져스2’ 논란의 중심이다.
라제기 엔터테인먼트팀장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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