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사법피해자 검찰과 법원에 대한 불신 폭발 직전
승복하지 않는다고 매도하기엔 그들의 외침 결코 가볍지 않아
구치소와 교도소에는 죄를 지은 사람들로 넘친다. 대부분 손가락질 당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임에도 모두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수감자들의 절규는 대체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푸념이나 신세한탄, 후회 정도로 간주된다. 특히 대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돼 확정판결까지 받았다면 그들의 하소연은 도리어 반성할 줄 모르는 뻔뻔함으로 치부된다.
그렇지만 사법부에서 최종 심판을 받았더라도 정말 억울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검사와 판사도 인간이다 보니 냉철한 판단보다는 감정에 실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법정에서 공개되는 제한된 진술과 증거로 판단하다 보면 실체적 진실을 못 볼 수도 있다. 상당수 판결은 유ㆍ무죄를 완벽히 가르기보다는 ‘무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유죄처럼 보인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처럼 사법부가 내린 결정이 절대선이 아닌데도 한번 내린 판단은 여전히 성역처럼 남아있다. 재심을 통해 사법기관의 잘못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한 사법부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모한 일로 간주된다.
그런 무모한 일을 한번 해보기로 했다. 기자는 뇌물수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70대 전직 시의원의 사연을 6개월 동안 다시 추적했다. 뇌물에서 대여금으로 말이 바뀐 3,000만원(31일자 28면)뿐만 아니라 뇌물로 인정된 4,000만원 역시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검찰과 법원의 판단은 과연 옳았는지, 실체적 진실은 무엇인지 다시 따져보기로 했다.
매우 추운 날이었다. 올해 1월26일 오후 70대 노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명동 사채왕’과 현직 판사간 검은 거래에 대한 취재기를 쓴 날이었다. 노인은 추운 날씨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신문에 쓴 기사를 보고 전화 드렸다. 너무 억울한 사연이 있어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 하루에만 비슷한 전화를 10통 이상 받았다. 다들 검찰과 법원 때문에 너무 억울해 못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억지주장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이 쏟아내는 사연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다들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다.
기자에게 전화를 했던 노인은 백의종(73)씨라는 사람이었다. 서울 마포구에서 2006년까지 4번이나 시의원에 당선됐고 부의장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그는 재건축 조합장에게서 뇌물 7,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2010년 11월 구속기소 된 후 일부 유죄가 인정돼 1년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가 2012년 5월 만기 출소했다.
백의종 씨는 지난해 일부 언론사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까지 난 사건이라 언론이 다루기에 큰 부담이 됐다고 한다. 그가 유명인사가 아니라서 기사가치가 없었을 수도 있고, 사건 자체에 극적인 부분이 부족한 것도 외면 받은 이유일 수 있다.
2010년 11월 재판에 넘겨진 백씨의 범죄 혐의는 간단하다. 공소장에는 ‘서울시의원이던 2005년 1월5일 서울 마포구 아현2동 백씨의 사무실에서 아현제3구역 재개발조합 설립 추진위원장인 유모(67)씨로부터 사업추진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를 빨리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청탁을 받고 1,000만원 짜리 수표 2장을 받았고, 3월29일에도 1,000만원 수표 한 장을 추가로 받았다. 같은 해 7월15일 오전에도 백씨 사무실에서 유씨로부터 현금 4,000만원을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조합장 유씨는 검찰과 법정에서 수표 3,000만원과 현금 4,000만원을 모두 뇌물로 줬다고 주장했다. 반면 백씨는 수표로 받은 3,000만원에 대해선 차용증을 작성하고 정상적으로 빌린 돈이며, 나머지 4,000만원은 아예 받은 적이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법원은 2011년 10월 3,000만원은 차용거래가 인정돼 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4,000만원은 유죄로 확정했다.
기자는 최근까지 6개월 동안 백씨를 30차례 이상 만나 묻고 또 물었다. 백씨는 그 때마다 “너무 억울해 죽고 싶을 지경”이라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백씨의 호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부담이 컸다. 검찰이 증거도 없이 백씨를 기소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고, 법원에서 검찰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유죄로 결론 내지 않았던가.
취재를 해보니 백씨는 수사와 재판을 받을 당시 이미 안 좋은 선입견이 덧씌워져 있었다. 우선 질이 안 좋기로 소문난 재건축 조합장과 금품거래를 했다는 사실부터가 그랬다. 조합장 유씨는 경찰관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이미 사법처리 된 전력이 있을 정도로 여기저기 돈을 뿌리는 사람이었다. 백의종 씨는 수표로 받은 3,000만원에 대해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장기간 갚지 않아 뇌물로 의심을 살만한 빌미를 제공했다. 또 백씨가 이번 사건 이전에 금품수수 전과가 있었던 사실과 재건축 구역을 담당한 시의원을 지냈다는 점도 백씨가 뇌물을 받았을 것이란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선입견이 사실관계보다 우선할 순 없지 않은가. 백씨에게 물었다. 나중에 억울함이 풀린다고 해도 주변에서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왜 그렇게 결백을 주장하는지. 그는 평생 자신을 뒷바라지하고 옥바라지까지 마다 않던 집사람이 출소 후 두 달 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겠나. 집사람 옆에서 떳떳하게 눈을 감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숨어 있길래 백의종 씨는 ‘다 끝난 사건’을 두고 이토록 결백을 주장할까. 백씨의 과거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검사와 판사라는 입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을 검토하고 현장을 가봤다. 놀랍게도 취재 과정에서 백씨 주변에선 심상치 않은 일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뇌물수수 시의원, 그는 사법 피해자인가’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는 ‘생사람 잡는 것 같아 괴롭다’는 제목으로 ‘백 40’ 메모 미스터리와 재소자들의 증언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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