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작가 아르나우트 믹
DMZ '아이스크림 고지' 영상작품
"촬영 장소 별명만큼 모순적"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가 내려다보이는 높이 219m 언덕 꼭대기에 작은 콘크리트 초소가 있다. 이 초소 옆에 20대 청년들이 둘러앉아 과자와 음료수를 나눠먹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도중 한 여성이 군복을 입자 분위기가 일변한다. 군인 역할을 맡은 청년들이 꼿꼿한 자세로 명령을 받기 시작한다. 포로 역을 담당한 이들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다. 군인은 포로의 머리에 가짜 총구를 들이대거나 머리채를 붙잡고 과격하게 흔든다.
네덜란드 작가 아르나우트 믹(53)이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평행선’을 열어 선보인 영상작품 ‘아이스크림 고지’는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철원의 삽슬봉, 일명 아이스크림 고지에서 평범한 한국 청년들이 벌이는 군대놀이 상황극을 촬영한 것이다. 믹은 2012년부터 비무장지대를 답사하고 아이스크림 고지를 촬영장소로 선택하는 등 이 작품에 장기간 공을 들였다. 이 곳은 한국전쟁 당시 삽슬봉에 극심한 폭격이 가해지면서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해서 붙은 별명이다. 28일 전지장에서 만난 믹은 “가혹한 현실의 무게를 가볍게 표현하는 모순적인 이름처럼 들렸다”고 했다.
믹은 지난해 갓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과 또래 여성들을 연기자로 기용한 뒤 “각자의 역할과 대략적인 설정만 알려주고 상황이 알아서 흘러가게끔 내버려 둔 채” 촬영을 했다. 평상시 평화롭기 그지 없던 청년들은 영상 속에서 언제든 적들을 살상하는 군인으로 변모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여준다. 믹은 “세계적 유행을 따르고 이끌기까지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군 복무 의무로 인해 마음 속 일부를 군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이들의 행동이 연기이긴 하지만, 한국 청년들이 전쟁과 폭력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믹은 세계 각국에서 국가 권력과 개인이 충돌하는 모습을 상황극으로 연출해 왔다. 이번 전시회에서 ‘아이스크림 고지’의 반대편에 전시된 2006년작 ‘훈련장’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이주노동자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암시한다. 영상 속에서 경비대원들이 무기를 들고 불법 이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을 체포하지만, 곧 일부 경비대원이 엎드리고 이민자가 무기를 드는 반대 상황이 벌어지면서 현장은 혼란스러워진다. 믹은 “타인에 대한 공포를 억누르고자 시도하는 억압적인 군사 통제는 권력자에게 같은 억압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믹은 “개인은 정치 권력의 작용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 권력에 반응하고 때로 반항할 수 있다. 그게 현실을 대하는 의무”라며 “내 작품에서 보이는 ‘다른 현실’을 통해 대안적인 정치 지형을 상상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11월 29일까지. (02)739-7098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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