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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의 매체는 대체] 시민적 예의

입력
2015.08.3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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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즈음, 강준만 교수가 작심하고 내놓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진보가 집권하지 못하는 것은 싸가지가 없어서다, 아니다 싸가지가 아니라 메시지의 부족이다, 둘 다 틀렸고 일상과 입장이 중요하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개별적인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아 오래 지나지 않아 수그러들었다. 얄궂게도 ‘싸가지 없다’는 표현이 정작 진보를 생각하는 이들 다수에게 무척 싸가지 없게 받아들여지는 바람에, 정작 그 안에 원래 담겨있는 핵심 내용의 중요성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여 미묘한 자기증명이 성립했을 따름이다. 그렇게 묻혀버린 핵심 내용이란 바로, 대립되는 입장을 타도할 적으로 취급하기보다는 설득하여 같은 사회에서 함께 나아갈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싸가지 운운보다는 화제몰이를 할 힘이 떨어지는 개념이지만, 그것이 바로 시민적 예의(civility)다. 서로가 공동의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는 대등한 시민이라는 전제를 깔고 그 위에서 입장을 견주는 소통의 예의다. 대등한 시민인 타인의 의견이나 정체성을 멸시하지 않으면서도 대등한 시민인 내 의견이 낫다고 증명하려는 규범이다. 우월한 승자와 열등한 패자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대등한 시민이지만 그 안에서 특정 사안에 더 합리적인 판단과 덜 합리적인 판단을 골라내는 갑갑한 과정이다.

시민적 예의는 싸가지 존재 여부 같은 ‘태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굳이 피곤하게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견줄 수밖에 없는 ‘목적’에 대한 것이다. 논쟁의 목적이 적대 세력의 배제에 의한 쾌감인가, 아니면 함께 나아가지 않으면 한 발짝도 못 나가는 현실에서 어쨌든 일보 진전을 이뤄내는 한시적 합의인가. 아주 드물게도 정의롭지만 미약한 우리 편과 사악하고 강대한 적들의 구도라면, 배제의 싸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상대의 특정 의견을 반론하는 것보다, 아예 상대의 인격 자체를 까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반사적 존재 증명이라도 해서 살아남으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넓고 깊은 지지를 이끌어내 무언가를 바꿔내고자 한다면, 반대측도 차마 거절은 못하도록 만들고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도 설득해야 하며 아예 사안에 무관심했던 층도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에 배제의 승부가 아닌 포섭의 논지가 필요한 것이고, 그 첫 단추가 바로 시민적 예의다.

실천은 어렵지만, 과제는 명확하다. 조롱의 통쾌함으로 우리 편을 결집시키는 것에 골몰하기보다, 인격체는 존중하고 함부로 진영으로 낙인 찍지 않되 논지는 건조하게 해부하여 사실성과 유용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몰락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 아니라, 반론과 재반론들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필요한 방식으로 걸러내어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제 정신인 미디어라면 도와야 할 부분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착시가 아닐 것이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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