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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범죄에 던지는 질문, 왜? 사건의 뒤안길, 실타래를 풀다

입력
2015.08.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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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편견과 거리감을 버리다… 할머니와 죄수 식사 준비하기도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와의 인연… 자원봉사 함께 한 가까운 사이

희생자의 편에 서다 "내 책, 희생자에게 경고 되길"

1931.10.22~2015.7.26 범죄 실화작가로서 앤 룰의 명성은, 한때 한 직장 동료였던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의 악명에 크게 빚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로 하여 내 이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로 인해 악은 인식될 수 있는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늘 야구방망이가 있었다고 한다. AP뉴스
1931.10.22~2015.7.26 범죄 실화작가로서 앤 룰의 명성은, 한때 한 직장 동료였던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의 악명에 크게 빚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로 하여 내 이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로 인해 악은 인식될 수 있는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늘 야구방망이가 있었다고 한다. AP뉴스

앤 룰(Ann Rule)은 30여 년간 40여 권의 범죄 논픽션을 쓴 작가다. 그는 “살인자는 어떻게 살인자가 되고 왜 살인을 저지르는지 알기 위해” 글을 썼다. 경찰 수사 기록과 재판, 범인과 피해자의 이력, 사생활,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 인터뷰 등이 글의 재료였다. 그는 범죄를 재구성하는 작가였지 이면을 분석하는 ‘전문가’는 아니었고, 범죄심리학을 공부했지만 범죄학자는 아니었다. 1년 남짓 경찰관으로 일한 적은 있지만 강력범죄 현장 근처에도 간 적이 없었다. 독자들은 경찰 공식 수사발표로 못 채운 의문이 있을 때면 그를 찾았고, 스티븐 킹이나 마이클 코넬리의 신작 못지않게 그의 작품을 기다렸다.

그가 물었던 ‘어떻게’와 ‘왜’는 독자들의 물음이기도 했다. 사실 그의 책 소재들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개요가 알려진 것들이었다. 사건 재구성만으로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저 질문, 특히 ‘왜’는 경찰 수사와 재판 기록,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 뇌과학 등 허다한 범죄 관련 학자와 전문가들의 판단과 의견을 종합하더라도 해명될 수 없는 질문일지 모른다. 내가 ‘그’가 아닌 한, 아니 그라 하더라도 온전히 답할 수 없는 질문. 독자들은 현대 범죄 사회가 던지는 저 질문 앞에 작가와 나란히 서기 위해,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형사나 배심원이 돼서 답을 찾기 위해 그의 책을 읽었다.

앤 룰은 1931년 10월 22일 미국 미시건 주 로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교나 관공서등과 시즌 계약을 맺고 축구, 육상 등을 가르치는 스포츠 코치였고, 어머니는 특수 교사였다.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니는 게 힘들어 그는 외조부모와 함께 유년을 보냈다. 외할아버지는 미시건 주 스탠턴 시 보안관이었다. 삼촌은 검시관이었고, 한 사촌은 훗날 기소검사가 됐다. 룰은 방학 때면 할머니와 함께 죄수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배식도 거들었다고 한다. “뜨개질을 가르쳐준 그 친절한 아주머니가 어쩌다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됐는지”궁금했지만 어른들의 대답은 그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외가 친척들과의 잦은 만남은 그를 범죄자나 범죄 사회에 대한 편견과 심리적 거리감을 눅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범행의 이면에 놓인 ‘왜’에 대한 생애에 걸친 호기심이 그렇게 시작됐다. 그녀의 책들은 모두 표지만 넘기면 그 질문에 대한 답들로 채워져 있었다.”(www.authorannrule.com)

그는 워싱턴대학에서 창작(Creative Writing)을 전공하면서 이상심리학과 범죄학, 수형학 수업을 따로 들었다. 그의 꿈은 경찰관이 되는 거였고, 53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애틀경찰서에 임시 경관으로 취직한다. 1년 남짓 그가 한 일은 주로 내근이었고, 정식 경찰관 시험에는 탈락한다. 근시 때문이었다. 그는 결혼을 했고, 프리랜스 작가로 온갖 매체에 온갖 종류의 글을 썼다. 여성지 등 대중 생활잡지가 주류였고, 대부분 육아나 요리, 생활정보 같은 글들이었다.

‘True Detective’라는 범죄 실화 전문지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69년부터였다. 그 무렵 그의 결혼생활은 위기를 맞고 있었고(그는 72년 이혼했다), 생계 부담도 컸다. 그에게 범죄 이야기는 현실을 견디고 또 현실을 지탱하는 수단이었다. 그 일은 유년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75년 한 출판사의 제의로 선인세 1만 달러를 받고 미제 살인사건만 소개한 책을 출판한 것은, 그가 잡지 기고자로서 꽤 인기를 얻은 덕이었다. 그의 모든 글과 책은 ‘여자가 무슨…’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가명으로 쓰여졌다. 그가 책에서 다룬 사건 중에는 ‘테드 번디’의 초기 살인사건도 포함돼 있었다. 물론 그 무렵 그는 테드 번디라는 이름도, 그가 희대의 연쇄살인마라는 사실도, 자신이 번디와 한 사무실에서 일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테드 번디(본명 Theodore Robert Bundy, 1946~1989ㆍ사진). 보이스카웃 모범단원에 교회 학생회 부회장, 우드로윌슨 고교 성적우수 졸업생, 워싱턴주 타코마 퓨젯사운드대 장학생, 워싱턴대 법대생, 뉴욕주지사 넬슨 록펠러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정치 지망생…. 그의 이력은 준수했다. 외모와 매너는 더 준수했다. 적어도 “내 폭스바겐으로 이 책들을 옮기는 일 잠깐만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순진한 여대생의 호의를 손쉽게 얻을 만큼은 됐다. 훗날 그에겐 ‘귀공자 살인마’라는 별명이 붙는다. 외조부모에게 입적돼 어머니를 누나라 부르며 자란 유년기, 20대에야 알게 된 출생의 비밀, 학창시절 겪은 실연의 상처, 내성적인 성격 등이 그의 다크 사이드로 꼽히는 이력이지만, 그가 괴물로 변한 사연에는 지금도 공백이 많다. 어쨌건 그는 괴물이었다. 74년부터 78년 2월 체포되기까지 약 4년 동안 그는 미국 전역을 누비며 확인된 것만 38명, 추정되는 것까지 치면 최대 100명에 이르는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시신의 살을 물어뜯고, 시간(屍姦)하고, 목을 잘라 간직하기도 했다. 경찰관이나 소방관 제복을 입고 범행하기도 했고, 목발을 짚고 여학생을 유인하기도 했다. 주로 대학 1,2년생을 노렸지만, 12살 소녀도 있었고 경찰 서장의 딸도 있었다. 77년 6월과 12월 두 차례 탈옥(한번은 휴정 중 법원 도서관 창문을 통해 탈출)했고, 두 번째 탈옥 직후에는 플로리다 주립대 여성기숙사에 침입해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 무려 5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그는 89년 1월 24일 사형 당했다. 드러나지 않은 자신의 모든 범행을 자백하는 조건으로 무기징역 감형을 청했지만, 행방불명자 가족들의 플리바긴 수용 탄원도 있었지만, 미국 검찰과 법원은 그를 전기의자에 앉혔다.

범죄실화 작가로서 앤 룰이 누린 명성에는 테드 번디의 덕이 컸다. 룰과 번디는 71년 시애틀 자살예방 ‘생명의 전화’ 자원봉사자로 함께 일했는데, 특히 둘은 퇴근도 함께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에도 그는 “잘 생기고 친절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 룰은 훗날 “만일 내가 좀 더 젊거나 독신이라면, 아니 내 딸들이라도 좀 더 컸다면… 하는 마음을 품기도 했었다.(…)그는 완벽한 남자였다”고 말했다.(워싱턴포스트, 2015.7.25)

번디가 처음 체포된 뒤 룰은 경찰 발표를 의심했다. 2003년 휴스턴 크로니클 인터뷰에서 룰은 “수사에 뭔가 끔찍한 실수가 있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번디가 탈옥하고 플로리다에서 추가 범행을 저지르던 무렵에야 그는 번디의 이야기를 책으로 쓸 결심을 한다. 80년 본명으로 출간된 그의 첫 책 ‘The Stranger Beside Me 내 곁의 낯선 자’는 200만 부 넘게 팔렸다. 여성 범죄 논픽션 작가로서의 삶이 그렇게 시작됐다.(소설도 한 편 썼지만 주목을 끌진 못했다.)

그는 유명해졌다. 시민들은(때로는 희생자 유가족들은) 사건 공식발표만으로 풀리지 않는 의구심을 그를 통해 풀고자 했다. 취재ㆍ집필 요청이 쇄도했고, 대개는 끔찍한 사건들이었다. 캔자스의 한 의사가 자신의 두 아이를 불태워 살해하고 남편까지 독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을 다룬 ‘Bitter Harvest(1997)’ 자신의 세 아이에게 총을 쏜 뒤 제3의 인물에게 누명을 씌우려다 발각된 오리건 주 한 여성의 사연인 ‘Small Sacrifices(87)’…. 2001년의 ‘Every Breath You Take’는 전 남편에 의해 저질러진 실라 벨루시(Sheila Bellush) 피살사건(97년)을 다룬 책이었다. 벨루시는 생명의 위협을 감지한 듯 여동생에게 “만일 내게 뭔 일이 생기면 앤 룰을 찾아가 꼭 내 얘기를 들려주라”고 말하곤 했고, 여동생은 2000년 2월 앤 룰에게 메일을 썼다.

그의 취재는 사립탐정의 역할과 겹치기도 했다. 자살로 종결된 98년의 론다 레이놀즈(Ronda Reynolds) 사건에서는 레이놀즈 어머니의 요청으로 사건 정황 등을 재조사, 자살이 아니라고 결론지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혼한 가족과 함께 살던 레이놀즈는 10대 의붓아들과의 불화로 다툼이 잦았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고, 가족들은 그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곤 했다고 진술했다. CBS 범죄실화 다큐멘터리 ‘48hours’에 출연한 앤 룰은 범행 현장과 부검 결과, 정황, 진술 등 1년여 간의 조사 결과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모든 지식과 경험에 비춰, 레이놀즈가 총으로 자신을 쏘는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 그녀를 쏘았지만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2012.12.22)

그의 작업은 실화를 재구성하는 거였지만, 범인에게든 희생자에게든 감정을 이입해야 할 때가 잦았다. 그는 “거리 두기에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내가 정서적으로 그 사건에 연루되지 않으면 책의 재미도 그만큼 떨어질 것임을 안다”고, 1999년 CNN 독자와의 대화에서 말했다.

그의 글쓰기는 대개 재판이 끝난 뒤에야 시작될 수 있었고, 앞선 취재가 재판 결과에 따라 수포로 돌아가는 일도 잦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확신이 배반당하는 일, 예컨대 유죄라 믿었지만 무죄로 판결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악의 모호함에 치이는 한편 (OJ 심슨 사건처럼) 심판의 모호함과도 싸워야 했다. 냉소주의의 유혹에 대해 그는 “악당 한 명을 심판하는 과정에 활약한 최소 서른 명 이상의 영웅들을 언급할 수 있다. 선한 인간성은 늘 악에 앞서 나아간다”고 말했다.(CNN, 1999.1.12) 하지만, “작업실에 호신용 방망이를 두고 글을 쓰곤 했”고(NYT), “불가피하게 영적인 삶을 추구하게도 됐다”고도 했다.(WP)

그의 어떤 작품들, 예컨대 1990년의 리사 노던(Liysa Northon) 사건을 다룬 ‘Heart Full of Lies(2003)’에서 그는 법원을 앞질러, 학대 받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노던이 자신의 살인을 정당방위로 가장하기 위해 학대 정황까지 조작한 의도적 살인임을 암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그는 옳았고, 리사 노던은 살인죄로 12년 형을 살았다. 법원은 2011년 명예훼손 소송을 기각했다.) 자신의 책에 대해 험담을 일삼은 한 피의자의 약혼자에 대해 그가 소송을 건 적도 있었다. 테드 번디와 관련해서는 “그로 하여 내 이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로 인해 악은 인식될 수 있는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NYT, 15.7.28)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책은 없다. 논픽션 작가로서 그의 재능과 실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가디언은 “그가 문학적 지위나 진지한 비평적 평가를 요구하거나 기대한 적 없고, 또 그의 작업에 어울리지도 않았다”고 적었다. 연쇄 살인범을 묘사하면서 ‘빼어나게 잘생긴(strikingly handsome)’ ‘어두운 분위기(dark mood)’같은 상투적인 문구들을 너무 쉽게 쓴다는 지적도 있다. 그에 대해 앤 룰은 “금전적 성공이 가장 중요한 보상”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98년 LA타임스 인터뷰에서 ‘타인의 비극으로 먹고 산다’는 데 대한 윤리적 죄의식으로 괴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도 있는데, 의사가 말하길 경찰도 장의사도 변호사도 유사한 윤리적 딜레마를 겪지만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당신의 감정과 태도라는 말이 큰 힘이 됐노라고 말했다. 그는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살인자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충실히 대변된다. 나는 희생자의 입장에서 그가 잃은 것들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출간한 뒤로도 피해자 가족들과 연락하며 근황을 챙겼고, 특히 미성년 청소년을 돕는 데 애썼다. 저자 사인회 등 출판 행사장은 사건 후일담을 묻고 답하는 자리가 되곤 했다.

가디언의 저 기사는, 그(의 책)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말하듯 세상 저 너머 어딘가에 숨어 실재하는 위험들을 이해하는 데” 그의 책들이 ‘실용적’ 도움을 주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내 바람은, 물론 불가능한 꿈이지만, 내 일거리가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 책이 잠재적 희생자에게 경고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 대부분은 여성이고, 또 대부분은 매맞는 여성이다. 내 책에 등장하는 희생자들 중에는 그런 여성들, 그리고 그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여성들이 아주 많다.(…) 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자신도 살해당했을지 모른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독자들도 있다.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8편이 TV 영화로 제작됐고, 5편은 제작 중이다.

그는 2013년 계단에서 굴러 골반뼈를 다친 뒤 지난 7월 26일 83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24시간 병석에 누워 지냈다. 지난 4월 그의 두 아들이 앤 룰을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그의 서명을 위조해 10만여 달러를 사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의 또 다른 ‘내 곁의 낯선 자들’이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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