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전쟁·월남붐에 가려진 '군번 없는 군인' 민간 기술자와
참전군인 등의 작은 역사들… 정치·외교 등 기존의 접근과 차별
베트남전쟁(1960~1975)이 끝난 지 올해로 40년, 한국은 이 전쟁을 무심히 돌아볼 수 없다. 당시 파병된 참전군인과 돈 벌러 갔던 노동자들, 전쟁 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목격한 베트남 사람들에게 이 전쟁은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의 기억은 날로 흐릿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 영향이 작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극우단체의 정치집회에 군복을 입고 나타나는 참전 노병들과, 그들을 안쓰럽게 또는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눈길만이 전쟁을 환기시킬 뿐이다. 파월 장병의 뒤를 따라 전장으로 갔던 파월 기술자들은 존재마저 잊혔다.
사회학자 윤충로가 쓴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는 베트남전쟁이 ‘잊힌 전쟁’이 아니라 ‘오래된 현재’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을 풀기 위해 참전군인과 파월 기술자 등 55명을 만나 구술을 듣고 이를 토대로 베트남전쟁이 한국 사회에 갖는 의미를 파헤친다. 정치ㆍ경제ㆍ외교 등 거시적 측면의 접근이 아니라 전쟁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한 실체를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된다. 구술을 중심으로 하되 정부의 공식담화문, 국회회의록, 신문, 잡지, 회고록 같은 문헌자료와 참전자나 그들의 가족이 갖고 있는 사진, 위문편지, 계약서, 참전을 독려하는 표어, 노래 등 관련 자료를 폭넓게 활용해 풍부하고 입체적인 성과를 내놓았다.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공식적인 기억이 무시했거나 억압한 ‘작은 역사들’이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 사회의 평가는 크게 두 가지다. 자유의 이름으로 참전한 ‘반공전쟁’, 전장의 핏값으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경제 전쟁’. 그러나 정작 참전군인들에게 이데올로기는 절대적인 게 아니었다. 저자가 만난 구술자들은 강제 차출됐거나, 당시 한국에서 아무 희망도 찾지 못해 돈이라도 벌자고 떠났다고 회고했다. 전장에서는 오직 생존이 목표였고, 용맹은 비겁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몸짓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연인원 32만 5,000여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5,099명이 죽고 1만 962명이 다쳤다. 그에 비해 당시 2만 4,000여명의 민간 기술자들이 베트남에 취업해 군번 없는 군인이나 다름없이 전장을 경험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파월 기술자들이 겪은 전쟁 이야기에 따로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파월 기술자는 미국의 군사지원기업 빈넬 등의 직원이 많았는데, 한국 기업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미군 군수품의 항만 하역과 육로 운송을 맡아 급성장한 한진. 최근 ‘땅콩회항’으로 지탄을 받은 대한한공의 바로 그 한진이다. 당시 ‘월남상사’로 불린 한진상사는 전쟁을 통해 돈더미 위에 올라앉았지만, 노동자 대우는 열악했다. 1971년 서울의 칼 빌딩 방화사건은 철모를 쓰고 실탄과 총을 갖춘 채 운송 차량을 몰아야 하는 위험한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귀국한 한진 기술자들이 미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벌인 항의였다. 이 사건은 베트남 특수에 가려져 있던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폭발한 사례이자 파월 특수의 끝을 알리는 조종이었다.
참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벌인 위문편지, 위문단 공연, 파월장병 가족 돕기 같은 갖가지 국가동원 체제의 우스꽝스런 소동 역시 돌아본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한국 사회의 갈등을 다룬 마지막 제 4부다. 그 중에도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중 하나인 기념비는 전쟁의 기억이 ‘기억의 전쟁’으로 둔갑한 오늘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세 개의 기념비를 비교한다. 베트남전쟁 당시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가 차례로 주둔했던 베트남 푸옌성의 한국-베트남평화공원, 참전군인단체인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베트남 하미마을에 세운 위령비, 그리고 관 주도로 강원도가 화천군에 만든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이다. 한국의 한 언론사 캠페인으로 세워진 푸옌성의 평화공원은 화해의 제스처로 의미 있는 장소지만, 관리가 제대로 안 될 만큼 관심 밖이다. 하미마을 위령비는 끝나지 않은 전쟁의 증인이다. 베트남 언론인이 쓴 비문에 들어간 민간인 학살이 논란이 되어 한국 측이 위령비를 바꿀 것을 요구하자 주민들은 비문에 손 대지 않고 대신 연꽃 그림판으로 가렸다. 그렇게 일단 ‘봉인’으로 과거사를 묻어 버렸지만, 걷어내면 드러날 진실이 그 아래 있다. 화천의 참전용사 만남의 장은 안보관광 상품으로 만들어졌다는 근본적인 문제뿐 아니라 베트남인이 보면 모욕으로 받아들일 재현물을 버젓이 세워놨다.
베트남전쟁은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에서 한국이 경험한 가장 큰 전쟁임에도 정작 당사자의 기억은 간과돼 왔다. 저자는 참전자와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가 존재하는 한 베트남전쟁은 여전히 ‘현재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이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가 됐다”며 “이를 위해서는 참전군인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의 관심과 배려가 필수”라고, “개인의 성찰에 대한 존중, 망각된 기억의 귀환을 함께할 사회적 성찰과 책임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참혹한 전쟁을 ‘월남붐’과 경제적 성취로 수렴하는 발전주의가 전쟁의 상처에 무감하고 이를 망각하는 사회를 연출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적실하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숙제를 던진다. “과거의 문은 그 과거의 진실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닫히지 않는다. 전쟁에 대한 우리 안의 신화를 해체하고, 전쟁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하고 성찰할 때 한국의 베트남전쟁은 현실이 아니라 역사로 남을 것이다. ”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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