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혐의를 받을 만한 유사성을 지닌다는 점을 확인하지만 의도적인 베껴쓰기, 곧 작가의 파렴치한 범죄 행위로 단정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도서출판 창비 편집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소설가 신경숙씨 표절 사태와 관련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백 교수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백영서 편집주간 명의로 나간 글을 지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백 주간은 머리글에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되나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문단 안팎의 비난을 받았다.
백 교수는 백 주간의 글에 대해 “나도 논의 과정에 참여했고 거기 표명된 입장을 지지한다”며 “의식적 절도 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한 일부 언론인과 상당수 문인들에게 불쾌한 도전행위일 수도” 있으나 “오랜 성찰과 토론 끝에 그러한 추정에 동의 않는 입장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십사”고 부탁했다. 또 표절 판정과 문학권력 문제가 “어느 하나도 단기간에 쉽게 척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창비가 힘닿는 대로 끈질기게 다뤄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외부 인사들에게 (창비) 내부에서 취한 조치를 일일이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백 교수가 사태 두 달 만에 침묵을 깨고 입장을 밝혔으나, 의도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논지로 표절에 면죄부를 주는 듯 주장한 것과 피상적인 사후 대책 때문에 논란은 되려 커질 것으로 보인다. 창비의 정신적 지주이자 군사독재 시절 민족문학의 중심이었던 백 교수는 신씨 표절 논란이 처음 불거진 당시 ‘참여문학의 거점이란 자존심을 버리고 신경숙 신화화에 일조했다’는 거센 비난을 들었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는 백 교수의 글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시대가 끝났다”고 한탄했다. 그는 앞서 “신씨가 의도했든 안 했든 표절은 표절”이라며 “창비 정도의 문학계간지가 문학 비평의 상식조차 모르쇠하면서 치졸한 변명을 되풀이하는 게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독자들도 “정치 사회적 현안에 대해선 훈계조로 나서면서 업계의 부정은 옹호한다” “의도성이란 단어로 말장난을 한다”는 등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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