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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좋은 관치(官治), 나쁜 관치

입력
2015.08.2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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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정책에도 ‘관치’ 비난 일쑤

조선산업 금융지원은 불가피 측면

은행금리ㆍ수수료 불개입은 부당

말이란 어차피 상황과 본질에 딱 들어맞게 쓰이기는 애초부터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요즘 ‘관치(官治)’라는 용어의 쓰임새에 나타나는 혼란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맞든 안 맞든 옳든 그르든, 아무데나 관치라는 관형사를 갖다 붙이고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일이 일상사가 됐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당연한 일까지 해서는 안 될 일로 오인되는가 하면, 정부 역시 관치 논란을 핑계로 할 일을 피하는 일까지 나타나게 됐다.

관치라는 단어는 본디 나쁜 의미가 따로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어쨌든 정부는 법령과 공익에 기반해 국가를 다스리는 집행기구다. 그러니 어찌 보면‘치(治)’는 정부를 가리키는 ‘관(官)’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행정학적으로도 관치는 그저 자치에 반대되는 개념이고, 경제적으로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에 비해 정부가 공익적 차원의 시장 개입에 나서는 걸 가리키는 용어 정도일 뿐이다.

문제는 관치가 항상 법과 공익에 의거하지 않는 데서 빚어졌다. 정부가 자원 배분권을 장악했던 과거 고도성장기엔 정당한 관치를 넘어 정권이나 관료들의 사적 이익이 개입되는 일이 빈번했다. 부정과 비리, 비효율이 만연하면서 관치에 대한 반감이 잉태됐다. 1997년 경제위기는 관치에 대한 반감이 혐오로까지 비화한 계기가 됐다. 그러잖아도 경제는 시장원리에 맡겨 두는 게 최선이라는 신자유주의가 기세등등했다. 거기에 정부의 무능이 위기를 부른 최대의 원인이라는 거센 비판이 가세하면서 관치는 버려야 할 구시대의 폐습쯤으로 전락했다.

이후로 관치라는 말은 정부를 ‘조지기’에 가장 편리한 무기가 됐다. 국회에서도 걸핏하면 관치 시비요, 언론도 관치라는 공격의 칼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최근 위기에 빠진 조선산업 금융지원을 둘러싼 관치 논란도 그런 시비의 대표적인 사례다.

전말은 이렇다. 대우조선해양이 플랜트 수출에서의 막대한 손실로 2분기에만 3조원의 충격적 적자를 냈다. 그러자 각 채권은행들은 위험에 대비한다며 대출한도를 줄이거나 만기연장 이자를 올리는 등 전형적인 ‘돈줄 죄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대우조선 살리기에 나서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3조원 가량의 정상화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위기가 세계 1등을 자랑하는 국내 조선업 전체로 확산될 경우, 수출과 고용 등에 걸쳐 국가경제 전체가 입을 타격을 감안한 고육책인 셈이었다. 금융감독원이 나서 은행에 돈줄을 죄지 말 것과, 정상화 자금 분담을 요청했다. 그러자 은행권과 일부 언론에서 즉각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한 야당 의원은 “(부실한)조선ㆍ해운산업의 상당수 기업들을 국책은행이 떠받치고 있는 실정”이라며 “관치를 중단하고 금융을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칙적으로 그런 비판은 옳다. 하지만 중국과 유럽이 조선ㆍ해운업에 대해 강력한 국가적 지원을 집중하는 글로벌경쟁 상황에서 우리 정부만 국내 산업의 위기를 방치할 수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이 경우, 무조건적인 관치 비판은 순진하거나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관치에 대한 반감에 편승해 관치를 포기하는 것도 문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사가 금리ㆍ수수료ㆍ배당 등 가격변수를 정할 때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규제완화라지만 실제론 은행 등에 대출금리와 수수료를 올릴 길을 열어준 ‘배려’인 셈이다. 정부는 가격비교가 이루어지는 만큼 금리 등을 함부로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융비용이 유사 담합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우리 현실에서 적절한 소비자 대책조차 없이 정부가 손을 떼는 건 자칫 직무유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관치의 화신’이라는 세간의 악평을 기꺼이 즐겼던 인물이다.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던 IMF 체제 때 그는 “시장주의니 뭐니 하는데, 거 철모르는 소리들 하지 마세요. 은행이 수익만 보고 일하기 시작하면 난리 나는 거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꼭 필요한 관치도 있다는, 쟁쟁한 항변이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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