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하버드대 소속 학자들
옛 동전·도자기부터 왕국터까지 복원 위해 입체 데이터화 나서
세계적 고고학자들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문화유산 파괴 만행에 맞서 3D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유적과 유물을 입체 데이터로 기록해 만에 하나 IS가 파괴하더라도 추후 완벽하게 복구하는 데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더 타임스는 28일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하버드대 소속 고고학자들이 중동에 3D카메라를 보내 훼손 위험에 처한 모든 유적 및 유물들을 디지털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옥스퍼드대 소재 디지털고고학연구소(IDA)는 더 타임스에게 “해당 프로젝트에 200만파운드(약 36억2,000만원)를 투자해 개당 20파운드 상당의 3D카메라를 중동 국가들에 보낼 계획”이라며 “지역주민 등 현지 파트너들과 협력해 가능한 한 많은 역사적 유물의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올 말까지 3D사진 500만장, 2017년까지 2,000만장을 찍어 전산화할 계획이다.
고고학자들의 이 같은 결정은 최근 IS가 시리아 팔미라 유적지에서 2,000년 전 세워진 고대 바알 샤민 신전을 무참히 파괴하면서 나왔다. 올 5월 팔미라를 장악한 IS는 6월에도 2,000년 된 사자상을 부수는 등 팔미라 고대유적지를 잇따라 훼손했다. 로저 마이클 IDA 소장은 “팔미라는 IS 우상파괴 작업의 상징이 돼 가고 있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고대유적 파괴 만행이 IS 주도로 계속되는 것을 우려했다.
촬영 대상은 옛 동전과 도자기부터 거대한 왕궁터까지 다양하다. 3D사진들은 IDA가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전시되며 미국 뉴욕대 고대연구소에도 보관된다. IDA는 다음달 말 이라크에 3D카메라를 배포하고 이후 레바논과 이란, 예멘, 아프가니스탄, 터키 동부 등으로 배급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카메라 디자인을 도운 옥스퍼드대 물리학자 알렉시 카레노스카는 “카메라는 크기가 아주 작은 데다 작동하기도 쉬우며 한 장에 다양한 각도의 형태를 담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IDA는 아울러 IS가 유물 밀매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3D 사진에 GPS 정보와 사진 촬영 날짜 등을 상세히 적어 넣을 계획이다. 마이클 소장은 “누군가 유물을 팔면서 습득 날짜와 위치 등을 속일 것에 대비해 위도와 경도, 촬영 시간이 모두 담긴 증거를 마련해 두는 것”이라고 전했다.
고고학자들의 이러한 행보는 주목할만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적, 유물의 복원보다 파괴 자체를 차단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또 수백만개의 문화 유산에 대한 사진촬영과 전산화 작업을 소수 고고학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맡아 하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최소한의 노력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IS 파괴력이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마이클 소장은 “IS는 유산을 모두 파괴해 팔미라의 역사를 다시 쓰려 시도하고 있다”며 “이대로 두면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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