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상처를 입으면 달아난다.” 슬픔을 어쩌지 못해 숲으로 도망친 이들의 이야기는 이미 라틴어 시절 시작된 문학사의 유구한 전통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역사학자이자 자연학자이며 시인인 헬렌 맥도날드의 ‘메이블 이야기’는 갑작스레 아버지와 사별한 후 극도의 슬픔을 길들이기 위해 참매를 기르며 숲 속에 은둔한, 애도와 치유의 기록이다. 밀도 높은 시적 언어, 문학사와 프로이트 심리학에 기반한 인간사에 대한 통찰, 영국 귀족들의 전통적 취미활동인 참매 조련법에 대한 전문적 기술과 생태학적 지식이 균형을 이루며 마침내 고통의 땅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 내면의 격동을 보여준다. 지난해 출간돼 영국 코스타상, 새뮤얼존슨상 등을 받았으며,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 모두 올해의 책으로 꼽은 작품이다.
“되돌아보면 모든 게 사랑이었다.” 사진기자였던 아버지가 취재현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그의 장성한 딸은 아버지가 주차시켜 놓고 다시는 찾아가지 못한 자동차를 가져다가 벽을 들이받을 정도로 슬픔의 광기에 빠져든다. 아버지를 강탈당했다는 억울함, 아버지가 자신을 두고 떠나버렸다는 분노, 다시는 그의 물질적 존재와 부대낄 수 없다는 그리움. 아버지는 활공하고 사냥하는 매의 야생성에 매료된 여섯 살짜리 어린 딸을 위해 언제건 모험을 떠나줬던 삶의 지지대였다. 인간과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욕망만 남은 딸은 참매 한 마리를 사서 숲 속에 틀어박힌다. 매만이 “나를 슬픔 없는 세계로 다시 데려다줄 테니까”.
살생을 좋아하고, 시무룩하고, 성미가 까다로운 매를 길들이는 지난한 과정은 앞서 매 길들이기 경험을 책으로 썼던 ‘아서왕’의 작가 T H 화이트에 대한 연구를 병행하며 진행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렸던 화이트는 평생 자신의 동성애적 욕망을 억압하며 난폭하게 살아온 절망적 인물이었다. 매를 통해 희망을 찾고자 했던 화이트는 그러나 아버지처럼 참매를 학대하고 조련에 실패한다. 상처받은 어린 아이가 결국 상처를 주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슬픈 이야기가 거기에는 있었다.
홀연히 떠났지만 아버지는 사랑의 기억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저자는 안전한 사랑을 갈구했으나 실패했던 화이트와 달리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는 데 성공하고, 더불어 자신의 슬픔도 길들인다. 끈을 풀고 날려보낸 메이블이 마음껏 비행을 한 후 다시 저자의 손 위로 돌아왔을 때, 마침내 그는 도시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손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으라고 있는 것이다. 손은 매의 횃대 노릇만 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야생은 인간 영혼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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