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받아 빛나는 눈으로 뒤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 뉴멕시코의 황량한 들판을 굽어보는 달, 요세미티산의 깎아지른 절벽. 미국의 수려한 자연풍경을 흑백 사진에 담아온 사진작가 안셀 아담스(1902~1984)의 며느리 진 아담스와 손녀 새러 아담스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안셀의 공식 컬렉션 ‘클래식 이미지(Classic Image)’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안셀 아담스의 사진은 한국에 간간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그가 손수 인쇄한 공식 컬렉션 전시는 처음이다. 지난 25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울에서의 전시가 흥분되고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장엄한 대자연 풍경은 누가 찍는다 해도 멋진 사진이 될 텐데, 안셀 아담스의 사진이 유독 사랑을 받은 이유는 뭘까. 며느리 진은 안셀의 사진을 동양화에 빗대 설명했다. “동양화는 자연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 본질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어요. 안셀의 사진도 비슷해요. 안셀은 단순히 풍경을 찍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연의 모습에 애정을 담아 사진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클래식(고전)이라 불리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먼 풍경만 찍지 않았다는 것. 물론 안셀 아담스의 대표작은 거대한 풍경 사진이다. 하지만 사시나무의 곧은 기둥, 거친 나뭇결, 산만하게 자라난 풀더미처럼 얼핏 사소해보이는 자연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여럿 남아있다. 진은 “안셀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찍을 때도 풍경을 찍을 때와 같은 정성을 들였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안셀 아담스 특유의 인화기법이다. 진은 “안셀은 사진을 찍는 것만큼이나 인화 작업도 중시했는데 이는 자신이 본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흑백의 농도를 0에서 10까지 11단계로 나누는 ‘존 시스템’을 고안하고, 이에 입각해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밝기의 흑백사진을 직접 현상했다. 흑백사진 작업을 고수했던 이유도 색상이 들어가면 흑백사진처럼 원하는 대로 명도를 조절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손녀 새러는“안셀은 어렸을 적 샌프란시스코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났기에 자연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며 “우리 가족들 모두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안셀은 자동차 위에 카메라 삼각대를 세우고 그랜드 캐니언에서 알래스카의 매킨리산까지 평생 미국 서부를 종횡무진했다. 그의 사진집은 1940년 미국 연방의회가 세쿼이아와 킹스 캐니언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안셀이 애정을 쏟은 장소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1916년 요세미티를 방문한 후 풍경에 매료된 안셀은 17세 때 미국의 환경보호단체인 ‘시에라 클럽’에 가입해 활동했다. 장인인 해리 베스트가 설립한 ‘베스트 스튜디오’를 이어받아 ‘안셀 아담스 갤러리’를 열고 ‘요세미티 사진 워크숍’을 꾸준히 개최했다. 현재 요세미티 남동부에는 그의 이름을 딴 봉우리와 들판이 있다.
안셀의 사진 대부분은 풍경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캘리포니아 만자나르 수용소에 강제수용된 일본계 미국인들의 인물을 찍기도 했다. 진은 “안셀은 설령 미국이 일본과 전쟁 중일지라도 미국 헌법은 일본계 미국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평소에도 그는 갈 곳 없는 가난한 동료 작가들을 위해 자기 집 방을 기꺼이 내주는 등 도덕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10월 19일까지 열리고 있는 이번 사진전에는 안셀 아담스의 사진 72점 외에도 그의 영향을 받아 자연을 촬영한 사진가 알란 로스, 밥 콜브레너, 테드 올랜드의 작품 152점이 함께 전시됐다. 진은 “그의 사진을 보고 나면 누구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에도 숲과 언덕이 많이 남아있더라”며 “안셀의 사진을 본 관객들에게도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 자연의 아름다움을 후세에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안셀 아담스 사진 전시장 건너편에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반대 농성이 28일까지 열흘 넘게 벌어지고 있었다. 환경부는 이날 환경파괴라는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승인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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