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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까지 지배하려던 일제의 욕망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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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까지 지배하려던 일제의 욕망 담겨

입력
2015.08.2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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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울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은 메이지 천황과 천황가의 시조라는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받들던 신사다. 일제는 조선신궁 건립 10주년이던 1935년 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을 회장으로 한 조선신궁봉찬회를 조직해 대대적인 기념사업에 나서는데, 그 일환으로 1937년 사진집 ‘은뢰(恩賴)’를 발행했다. ‘은혜를 받다’라는 뜻의 제목 ‘은뢰’(일본어 ‘미타마노호유’)가 암시하듯 천황의 은혜로 조선이 발전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책자다. 조선신궁 관련 사진 143장을 비롯해 조선의 명승과 고적, 풍광과 풍속, 일제가 조선에 지은 근대건축물 등 총 500장이 넘는 사진에 짧은 글을 붙여 호화 장정으로 만들었다.

일제시기 중요 자료집으로 내용 일부만 알려졌던 ‘은뢰’를 번역한 ‘은뢰: 조선신궁에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풍경’이 나왔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가 엮고 소명출판이 발간했다. 1937년 나온 원본의 판형을 그대로 살렸고, 사진집으로는 드물게 문학, 역사, 조경, 사진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 6명의 해설을 붙였다. 가로 42㎝, 세로 38㎝, 두께 5㎝의 크고 무거운 책이 되었다. 책값은 28만원. 판형과 편집, 장정과 지질을 보면 그럴 만하다.

조선신궁봉찬회가 ‘은뢰’를 펴낸 목적은 편집후기에 잘 드러난다. 단순히 신궁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을 넘어, ‘진실한 신광(神光)의 현현’으로서 ‘(조선의) 생생한 발전상’을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내선 동근(同根)의 사상을 배양할 수 있도록’했다. 척 봤을 때 ‘은뢰’는 아름답고 품격 있는 사진집이다. 몽타주 기법을 활용하는 등 최고의 기술로 제작한 화려하고 몽환적인 사진, 거기에 붙인 110편의 시와 간결하면서 효과적인 설명, 편집 후기에 밝힌 대로 우려전아(優麗典雅)한 지면 편집이 특징이다. 심미적 요소를 극대화함으로써 식민 지배에 대한 거부감을 지우려 했다. 그런 점에서 ‘은뢰’는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을 정신의 밑바닥까지 지배하고자 했던 일본제국주의의 치밀한 기획이다.

김대호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번역판에 쓴 해설에서 “‘은뢰’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수많은 비밀을 여는 열쇠”라며 “실린 사진만으로도 흥미롭고 귀한 자료가 많다”고 평가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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