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임기의 절반이 지났다. 반환점까지 오는 사이 대선 과정에서 야기된 각종 법률이슈도 하나둘씩 정리되고 있다. 올 1월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사건 축소·은폐 수사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7월에는 댓글 작성을 지시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그 중 압권은 최근 검찰이 국정원 여직원 사건을 수사한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모해위증죄로 기소한 것이다.
김용판의 무죄 판결이 확정되자 권은희를 위증죄로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올 때만 해도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수사에 관여했던 경찰 17명과 유독 다른 권은희 진술의 한계를 지적한 법원 판결문이 있었지만, 검찰이 같은 편에 섰던 내부고발자를 거짓말쟁이로 몰 수는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로 설마는 사실이 됐다. 시간이 지났지만 이 사건을 다시 리뷰하는 이유다.
김용판의 무죄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김용판이 권은희에게 전화를 걸어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보류하라고 종용했다거나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이 임의로 컴퓨터 분석 범위를 제한해 허위 결과를 도출했다는 권은희의 주장을 모두 믿지 않았다.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거나 다른 증인들의 진술과 배치된다는 이유였다.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보류한 것은 당시 수사팀이 확보한 자료로는 소명이 부족했기 때문이었고, 컴퓨터 분석 범위를 제한한 것은 실무선의 고민과 토론을 거쳐 자연스럽게 도출된 결론이었다고 판단했다. 108쪽의 1심 판결문, 52쪽의 항소심 판결문에는 공개된 법정에서 관련된 모든 증인의 진술을 듣고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판단하려고 한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다.
하지만 김용판의 무죄 판결문이 곧바로 권은희를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검사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입증을 하지 못한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형사사법절차의 대원칙이다. 김용판에 대한 무죄 판결도 마찬가지다. 핵심 증인인 권은희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한 정도이지 권은희가 위증을 했다고까지 말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서울경찰청은 ‘여직원의 컴퓨터에서 지지ㆍ비방 게시글 혹은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잘못된 수사결과를 발표한 책임이 있다. 또 ‘보도자료 배포(대선 3일 전 밤 11시 마지막 TV토론 직후) 및 언론 브리핑(대선 이틀 전)의 시기’가 최선이었는지는 의문이라고 판결문도 지적하고 있다. 권은희는 근본적으로 이런 의심스러운 정황을 외압의 결과로 의심했을 뿐이다.
검찰이라고 이런 사정을 모를까. 그런데도 권은희에 대한 검찰 공소장은 법원 판결문을 그대로 베껴 놓은 수준이다. 수사를 통해 추가로 밝혀낸 사실 없이 판결문 내용을 모해위증죄 공소장의 범죄사실로 바꿔 놓았을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권은희의 위증 동기를 물어도 검찰은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선 직후 윗선의 부당개입을 폭로한 권은희가 야당의 텃밭인 광주에서 국회의원 공천을 받으면서 스스로 내부고발의 순수성을 깎아 내리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검찰의 설명은 하루아침에 내부고발자를 범죄자로 둔갑시킨 근거로는 빈약하기 그지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일선 검사들 사이에 ‘못난이 삼형제’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된 적이 있다. KBS 정연주 사장 배임, 미네르바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명예훼손 사건은 기소하지 말았어야 하는 사건이라는 의미로, 정권 눈치를 보며 기소독점권을 남용하는 검찰을 비꼰 말이다. 실제로 세 사건 모두 나중에 무죄 판결이 나왔다. 벌써부터 검찰 주변에선 권은희 기소 후 어느 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에 근접했다는 뒷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못난이 형제’ 계보를 박근혜 정부의 검찰이 잇지 말란 법도 없다.
사회부 김영화기자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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