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800억 편성 불구 용처 몰라
野, 국정원·檢 등 집중 겨냥
"항목 공개 등 투명성 확보 위해 소위 설치 안하면 결산 처리 불가"
與 "최근 몇년간 꾸준히 축소·동결, 별도 기구 굳이 만들어야 하나"
내년 총선·대선 염두 장기전 예고
여야가 이른바 ‘특수활동비’를 두고 새해 예산안 심의 기싸움에 돌입했다. 당장은 올해 예산 결산심사를 둘러싼 힘겨루기이지만, 야당이 그간 사정기관의 특수활동비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해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까지를 내다보는 장기전이 시작된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7일 예산결산심사특별위원회 내에 특수활동비 개선소위 구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이 이를 거부할 경우 28일 본회의 결산안 처리 불가 방침을 밝혔다.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특수활동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소위 구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결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최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예결특위 야당 간사이자 결산심사소위원장인 안민석 의원도 “개선소위 구성 없이는 결산심사 의결도 없다”고 못박았다.
야당은 특히 최근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해킹 의혹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과 검찰 등 사정기관 특수활동비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올해 편성된 특수활동비만 해도 8,811억원에 달하지만, 누가 언제 어떤 용도로 어떻게 썼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묻지마 예산’이어서 사실상 민간인 사찰과 공안통치를 위한 정보활동비로 사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특수활동비는 현행법상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청와대와 국회를 비롯, 국정원과 군, 검찰 등의 국가기관이 업무추진비 외에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 등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받는 돈을 통칭한다. 업무추진비와는 달리 지출 증빙 의무가 없고, 이 때문에 재정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정권안보 차원에서 활용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간 야당은 총액 삭감과 세부항목 공개를 거듭 주장했지만, 여당이 이를 반대하면서 논의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런 상황은 여야가 바뀌었던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정부 들어 특수활동비가 가장 크게 논란이 됐던 건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이 전면에 떠오르면서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삭감을 강력 요구했고, 여야간 숱한 공방 끝에 지난해 국회에서 2015년도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청와대 비서실과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각각 2억8,000만원, 20억원 삭감됐다.
앞서 지난 5월에도 특수활동비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셌는데, 당시엔 여당인 새누리당이 이례적으로 적극 나서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는 “국회 상임위원장 등에 대한 특수활동비 문제는 전부 신용카드를 사용토록 하면 된다”고 제안했고,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도 “국회와 기획재정부, 감사원 등이 함께 제도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태도는 또 다시 달라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야당의 예결특위 내 개선소위 구성 요구에 대해 “특수활동비는 최근 몇년 동안 꾸준히 축소ㆍ동결됐고 투명성 강화 노력이 있었는데 굳이 별도기구를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특수활동비 중에서도 사정기관 특수활동비가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총선ㆍ대선의 공정성과 의도적인 공안정국 조성 논란 등과 맞닿아 있다”면서 “야당 입장에선 ‘제2의 국정원 댓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손발을 묶겠다는 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