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인종차별 희생자로 미화 시도
한손에 총들고 한손으론 동영상 찍어
범행 과정 트위터·페북에 올려 충격
나르시즘·복수·미디어 결합된
현대사회 정신병리 증상의 종합판
미국에서 26일 TV 생방송에서 리포트 중인 기자를 총으로 쏜 충격적 사건의 범인이 범행 과정을 동영상으로 직접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올려 충격을 주고 있다. 전직 방송기자인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알리기 위해 생방송 시간대를 노린 데다 스포츠 중계방송처럼 범행 현장을 영상에 담아 SNS를 통해 전세계에 퍼뜨렸다는 점에서 이번 범행은 자신에 대한 애착증후군인 나르시즘과 복수, 미디어 등이 결합된 현대사회 정신병리적 증상의 종합판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미 CBS방송 계열 지역 방송사인 WDBJ의 앨리슨 파커(24) 기자와 애덤 워드(27) 카메라 촬영기자는 이날 오전6시45분쯤 미 버니지아주 플랭클린 카운티의 복합휴양시설인 브리지워터플라자에서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같은 방송사의 동료였던 베스터 리 플래내건(41)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플래내건은 사건 발생 직후 5시간 만인 오전 11시30분쯤 주간 고속도로 66번의 동쪽 방향으로 도주하던 중 경찰에 발각되자 스스로에게 총을 쏴 목숨을 끊었다.
플래내건은 오랜 시간을 두고 철저히 이번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자신의 범행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영웅적 행위임을 선전하기 위해 방송과 SNS를 치밀하게 이용했다.
플래내건은 범행을 저지른 후 2시간 정도 뒤인 오전 9시쯤에 abc방송에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내는 자살 노트’라는 제목의 문건을 팩스로 보냈다. 플래내건은 범행을 저지르기 몇 주 전에 abc에 전화를 걸어 팩스 번호를 물어봤다. 플래내건은 문건에서 자신의 범행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6월1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교회에서 백인인 딜런 루프가 총으로 흑인 9명을 죽인 사건을 언급하며 “찰스턴 총기난사 사건이 6월17일 발생했고 나는 (이틀 뒤인) 6월19일 총기 구입을 위해 돈을 지불했다”며 “나를 이 지경까지 몰아 붙인 것은 교회 총격 사건이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자신이 폭발을 기다리는 인간 화약통이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그는 2007년 버지니아 대학에서 총기 난사로 32명을 살해한 조승희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적었다.
플래내건이 자신의 범행 동기로 찰스턴 흑인교회 사건을 내세운 것은 자신을 인종차별의 희생자이자 대변자로 미화시키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플래내건은 2013년 2월 WDBJ에서 해고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흑인인 탓에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파커 기자와 워드 기자와 관련해 “(자신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등 이들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WDBJ의 마크스 국장은 “(플래내건의 주장은) 아무 것도 뒷받침 된 것이 없다.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플래내건은 사건 발생 직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자신의 범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올렸다. 자신의 행동을 백인 인종우월주의자를 처단하는 영웅적 행동으로 여겼다는 분석이다. 그는 현장에서 한 손에는 총을 들고 피해자들을 향해 쏘면서 다른 손으로는 휴대폰 카메라로 해당 영상을 녹화했다. 이후 그는 경찰에 추적을 당하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죽이는 장면 찍어놨어”라고 적고 범행 영상을 올렸다.
기술정보 회사인 엔드포인트 테크놀로지스 어소시에이츠의 로저 케이 대표는 “테러 단체인 이슬람국가가 참수 장면을 유포하는데 SNS를 이용하고는 있지만 개인이 사적인 이유로 이런 충격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라며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AFP에 말했다. USA투데이는 “살인자는 전세계가 자신의 행동을 보기를 원했다”면서 “방송기자로 미디어의 특성을 아는 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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