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작가 조덕현·이불 개인전
전시장 한 가운데 설치된 낡은 집. 방 안을 들여다보면 한 노인이 담요와 이불, 주전자와 옷가지 등 최소한의 생활용품만 놓고 사는 모습이 영상으로 흐른다. 영상을 둘러싼 거울로 작은 방은 무한 확장한다. 거울의 저 끝 어딘가에는 노인이 꿈꾸던 1950~70년대 ‘은막의 스타’로서의 삶도 있을 것같다. 집 뒤편에는 그가 꿈꾸었던 영화배우의 모습이 한지에 연필로 그려졌다. 꿈 속에서 그는 한국 영화 ‘청춘쌍곡선’을 넘어 헐리우드 영화 ‘카사블랑카’ ‘키드 갈라드’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7년 만에 대규모 개인전 ‘꿈’을 여는 화가 겸 설치작가 조덕현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인물 조덕현(1914~1995)을 상상했다. 가상 인물 조덕현은 광복 전 중국 상하이에서 잠시 단역배우로 활동하다가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후 평생 홀로 외롭게 산 인물이다. 소설가 김기창이 단편소설 ‘하나의 강’을 집필해 비극적인 인생에 살을 붙이고, 이를 토대로 영화배우인 다른 동명이인 조덕현이 가상 인물을 연기했다.
26일 전시장에서 만난 화가 조덕현은 “요양원에 오래 누워계셨던 어머니를 보고 모티브를 잡았다”며 “사라지는 이들의 추억할만한 시대를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1990년부터 사용하던 거울의 모티브는 이번 전시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되짚는 수단으로 쓰였다. 그는 “과거사를 어떤 프레임에 입각해 조명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10월 25일까지. (02)2020-2050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5년 만에 화랑 개인전을 갖는 이불 역시 거울을 활용한 새 조각 26점을 선보인다. 신작 중 대부분은 원형 양면거울과 LED 조명, 크리스탈을 장식한 샹들리에 형태다. 거꾸로 매달린 샹들리에의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지름 30㎝ 남짓한 거울을 통해 하늘 끝까지 무한히 펼쳐진 미래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인간의 불멸성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지만 그 끝은 어쩐지 공허하다.
벽면에는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세로 1.8m, 가로 1.3m의 평면 거울 4점이 설치됐다. 이불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넓이 615㎡의 전시장을 아크릴 거울로 가득 채운 대규모 설치작 ‘태양의 도시 Ⅱ’를 만들었는데 그 때 사용한 거울을 재활용한 것이다. ‘태양의 도시’는 작가 이불이 꿈꾸지만 끝내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를 상징한다.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자신을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은 우울해진다. 이불은 “거울은 스스로를 대면하게 하는 소재”라고 설명했다. 9월 25일까지. (02)734-9467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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