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 소재·전라 연기의 화제작
국내 초연 40주년 맞아 내달 공연
전라의 소년이 바닥에서 꿈틀대고 중년 남자가 그를 바라본다. 누군가가 그들을 또 지켜보고 관객은 이 모두를 지켜본다. 여러 겹의 시선, ‘관음을 관음하는’ 비정상의 이면을 통해 묵직하고 도발적인 화두인 신과 인간, 섹스를 비튼다.
극단 실험극장의 연극 ‘에쿠우스’(희곡 피터 셰퍼)가 국내 초연 40년을 맞았다. 정신과 의사 마틴이 쇠꼬챙이로 말 7마리 눈을 찌른 소년 알런을 진찰하는 내용의 이 작품은 파격적인 소재와 배우들의 전라 연기로 1975년 초연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특히 강태기,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등 알런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은 한결같이 당대 청춘 스타의 계보를 이어 캐스팅 만으로 화제였다. 9월 4일~11월 1일 충무아트홀에 올려지는 40주년 공연의 알런 역할에는 올 봄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아버지인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열연한 남윤호(31ㆍ본명 유대식)와 김기덕 영화 ‘뫼비우스’에서 아들 역을 맡은 서영주(17)가 더블 캐스팅됐다.
26일 대학로에서 만난 두 사람은 “욕심 낸 역할이지만 기회가 ‘너무 빨리’ 찾아와 부담감을 떨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너덜너덜해진 대본집 첫머리에 남윤호는 나름의 작품 분석을 수 쪽에 걸쳐 깨알같이 적어놨고, 서영주는 ‘감당하기 어렵다’ ‘힘 빼자’는 자학으로 점철된 일기를 연재했다.
“2009년 오디션을 보러 뉴욕 브로드웨이에 갔다가 대니얼 래드클리프(영화 ‘해리포터’의 주인공) 버전으로 ‘에쿠우스’를 처음 봤다”는 남윤호는 영국 로열할로웨이대에서 영화 연출을, 미국 UCLA대학원에서 연기를 전공한 뒤 2012년 극단 여행자에 입단해 내공을 쌓았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알런 역할에 낙점됐다는 소식을 들은 건 5월 ‘페리클레스’ 공연 중반 무렵. 극단과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 처음 주인공을 맡게 된 그는 “상대방 대사도 웬만하면 다 외우려고 한다”고 말할 만큼 독하게 준비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2012년 영화 ‘범죄소년’의 소년수 역할로 도쿄국제영화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서영주에게 첫 연극 도전은 “연습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논리적이고 치밀한 ‘에쿠우스’보다 논리적 합리성마저 깨버린 김기덕의 영화에서 연기하기가 더 쉬웠다는 엄살도 덧붙인다. “영화는 카메라 촬영에 따라 각 장면을 따로 연기하는데, 연극은 흐름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점이 힘들더라고요.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건 또 처음이라 첫 공연이 어떨지 떨리면서도 기대돼요.”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온 남윤호가 “거칠면서 순수한” 알런의 정석 버전을, 서영주는 “10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선보일 참이다. “처음에 알런을 단순히 미친놈이라고 생각해서 대본 초반에 계속 ‘감당하기 어렵다’고 썼는데, 연습하면서 알런의 행동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죠. 10대가 이 역할 맡은 건 제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완벽하진 않지만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어요.”(서영주)
주인공 알런과 같은 나이인 서영주가 캐스팅되면서 전라의 19금 연극은 이번 공연에서 ‘속옷은 입고 나오는’ 고교생 이상 관람가로 바뀐다. “저 때문에 (원작을 바꿔)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서영주는 캐스팅이 확정된 후야 지난해 국내 공연 녹화분을 보았다.
서군이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듯한 맑은 제 목소리를 그대로 공연에서 쓰는 반면, 30대인 남윤호는 연습 내내 낮은 ‘라’음부터 높은 ‘솔’까지 다양한 발성으로 알런의 모습을 찾고 있다. 그가 “이번 공연에 제 카드를 다 내놓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알런은 가정 환경과 시대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인물이죠. 아직은 10대라 자신의 억압을 이성으로 제어하기보다 유일한 탈출구인 말에게 표출해버리기 때문에 정신병자로 보이죠. 현대인이라면 누군가 품고 있는 응어리를 무대에서 풀어내고 싶어요.”(남윤호)
(02)889-3561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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