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노브라로 집을 나섰다. 집과 지하철역은 도보로 10여 분 정도의 거리. 그리고 지하철을 타면 회사까지 다시 10분. 총 20여 분의 짧은 출근길이지만, 마주치는 사람이 많았다. 집 앞까진 괜찮았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노브라를 알아채지 못했다. 간혹, 기자의 몸을 별 생각 없이 쳐다보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노골적으로 바라보거나 불편한 기색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망했다. ‘난 당당하다, 원하던 거다’라고 스스로 생각해도, ‘누군가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부끄러움이 뒤섞였다.
패기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티셔츠를 잡았다. 가슴의 모양이 더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다녔다. 그래야 노브라인 것이 덜 티가 났다. 선배 기자는 “위축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 기획은 한나절 만에 그만뒀다. 오후에 다른 취재를 나가면서 집에 들러 브래지어를 입었다. 그제서야 편안했다. ‘타인의 시선에 저항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내면의 시선조차 넘어서지 못했다.”(오마이뉴스 8월 27일 ‘호기롭게 ‘노브라’로 출근, 반나절만에 집으로’▶전문 보기)
브래지어를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1910년대 미국 사교계를 주름 잡았던 메리 제이콥으로 알려져 있다. 코르셋에 답답함을 느끼다 우연히 손수건과 리본으로 만들어 코르셋 대신 가슴만 가렸더니 그 자유로움이 비길 데 없었고 심지어 더 관능적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제이콥은 이 가슴가리개의 발명 특허를 냈고, 그 특허를 ‘워너브러더스 코르셋’이라는 회사에 팔았다. 그리고 지금의 브래지어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브래지어는 페미니스트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1968년 미국 애틀랜시티에서 열리려던 미인선발대회가 여성을 성상품화한다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거센 반발로 중단됐다. 이들은 여성의 굴종을 상징한다며 브래지어, 걸레 등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때 브래지어를 불태우지는 않았지만 이후 이런 주의주장은 ‘브래지어 불태우기’로 불렸다.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브래지어가 유방암과 관련 있다며 적지 않은 여성들이 매년 3월 브래지어 벗어 던지기 국제행사를 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해마다 발표하는 남녀평등순위에서 지난해 한국은 조사 대상 142개국 중 117위였다. 복지 관련 여러 지표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하위권으로 나온다고 통탄하는 것 못지 않게 심각한 수치다. 여성혐오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 자체가 양성 평등에서 이 사회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대변한다. 서두에 인용한 노브라 체험기를 읽으면서 양성 평등에 대해 생각해본다.
“페미니즘의 핵심적 정의는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주장’이다. 현대의 페미니즘은 ‘여성’ 만이 아니라, 인종, 계층, 나이, 신체적 능력, 성적 성향 등에 근거한 차별에 반대하며 그 다양한 ‘소수자’들도 ‘인간’이라는 이해를 담고 있다. ‘페미니스트’란 성차별주의적 구조들에 대한 우선적 비판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여타의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이들의 ‘정치적 입장’을 나타내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그 성차별적 가치와 제도에 반대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정의가 실현되기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이들이 바로 ‘페미니스트’인 것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관한 것이며, ‘페미니스트’란 ‘생물학적 표지’가 아닌 ‘정치적 표지’이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되어 가야만 한다.’ 페미니즘은 자신의 생물학적 본질성에 근거해서 또는 여성들을 ‘위하여’ 라는 시혜적 의미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의 철학자이며 정치가 중의 한 명이었던 존 스튜어트 밀은 1869년에 나온 ‘여성의 종속’이라는 책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성이 법과 교육을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초석을 놓는 데에 기여한다. 그는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남성 페미니스트’들 중의 한 사람이다. 여성에 대한 고질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이 사라져서 더 이상 ‘페미니스트’라는 언어가 필요 없을 때까지, 생물학적 성에 상관없이 더 많은 이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가야만 한다.”(한국일보 8월 12일자 강남순 칼럼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전문 보기)
“저는 페미니스트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여성주의적인 것인지는 늘 고민스럽습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는 효과적인 전략이지만, 그 효력을 잘 계산해야 합니다. 모든 선언은 일시적 전략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페미니즘의 정의가 불가능한 것은 태생적 모순입니다. 모든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그 다양한 사람들을 여성이라는 울타리로 억지로 묶고 여성의 가치를 남성을 위한 삶(이것이 성역할 규범입니다)으로 정해놓은 것이 성차별이니까요. 지구상에 여성이 35억명인데, 어떻게 여성이 같은 처지일 수 있겠어요? 간혹, 부자 여성이 있고 가난한 남성이 있는 것이 그렇게 이상합니까.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등 여성들 사이의 다름을 인식하고 차이를 갈등이 아니라 자원으로 삼고자 하는 세계관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rooting), 동시에 이동하고 변화하면서(shifting) 성장하는 것입니다.…
여성주의 의식은 중요합니다. 문제는 여성주의에는 반드시 누구의 여성주의인가라는 논쟁이 동반된다는 사실입니다. 성매매가 가장 대표적인 이슈일 것입니다. 여성이나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격렬하지요. 이럴 때는 어떤 입장이 여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부터 판단하기 어렵습니다.…그런데 법을 적용하는 판관도 아닌데 개념이 그리 중요한가요? 원래 개념을 규정하는 것은 권력 아닙니까? 언어는 권력 투쟁의 산물, 수시로 변합니다. 모든 지식은 임시적, 임의적이죠. 사전은 그 과정을 반영할 뿐이고요. 그래서 저는 “~주의자”보다 성실한 인간을 선호합니다. 아, 참 국립국어원은 ‘남성 페미니스트’를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앞에 “예쁜 여성에게만” 붙이면 완벽하네요!”(한겨레신문 8월 22일자 정희진의 어떤 메모 ‘페미니스트’▶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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