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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4대강 악몽 되풀이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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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4대강 악몽 되풀이될 것

입력
2015.08.2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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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오늘 건설사업 승인 심사

"예정지역에 멸종 위기 10여종 서식… 무분별 자연개발 빗장 열릴까 걱정"

박그림 대표가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그림 대표가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400만㎢의 설악산 국립공원에 3.5㎞ 빨랫줄 하나 걸치는 것이 뭐가 그리 문제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산줄기를 한 번 깎으면 복원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미래세대의 자연유산을 지금 빌려 쓰고 있는 겁니다.”

박그림(67) 설악녹색연합대표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건설사업 심사를 하루 앞둔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박 대표는 “1993년 설악녹색연합을 만든 뒤 22년간 설악산 보전 운동을 해오면서 케이블카 건설사업과 벌써 세 번째 싸운다”며 “2012ㆍ2013년에 자연훼손과 경제성 부족 등을 이유로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부결됐듯 이번에도 같은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8일 광화문에 설치한 천막에서 숙식하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건설사업 반대 농성을 10일째 벌이고 있다. 앞서 10일에는 케이블카 예정 노선을 오체투지(五體投地)로 10시간 행진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건설은 강원 양양군 오색리에서 시작해 설악산 끝청봉(1,480m)까지 3.5㎞ 구간을 케이블로 잇는 사업이다. 개발 행위가 제한된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는 1990년대 덕유산 무주리조트를 끝으로 20년 넘게 허가된 적이 없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평창올림픽에 맞춰 조기 추진됐으면 한다”고 말한 뒤 급물살을 탔다. 양양군은 ▦탐방로 훼손 방지 ▦지역경제 발전 ▦장애인ㆍ노약자의 탐방 편의 제공 등을 이유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시민단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ㆍ환경 파괴를 이유로 결사반대한다. 최대 길이 50m 이상인 지주 9개가 산줄기에 박히고, 8인승 케이블카 53대가 시간당 최대 825명을 설악산 정상 턱밑까지 실어 나를 경우 오히려 탐방로 훼손이 가속화할 거라는 우려에서다.

박 대표는 “케이블카의 종점인 끝청봉에서 능선을 타고 1.4㎞만 가면 설악산 주봉우리인 대청봉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케이블카가 운영되면 승강장 울타리를 넘어 대청봉으로 향하는 불법 산행을 막기 어렵다”며 “탐방객을 분산해 자연훼손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대청봉에 사람이 몰리면서 더 큰 파괴를 부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양양군은 불법 산행을 막겠다고 하지만 과거 덕유산국립공원 설천봉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주봉우리인 향적봉에 오르는 불법 산행길이 보편화하면서 정식 등산로로 인정받은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덕유산 설천봉에서 향적봉에 이르는 0.6㎞ 구간은 케이블카 설치로 탐방객이 몰리면서 전국 15개 산악형 국립공원 144개 탐방로 중 자연생태계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악녹색연합 창립 이후 줄곧 설악산에 서식하는 산양 보호활동을 해온 박 대표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정부ㆍ지자체의 허울뿐인 생태보전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역에는 10종이 넘는 멸종위기동식물이 서식한다.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 250여마리도 산다. 국내에서 서식하는 산양(800여 마리)의 30% 규모다. 양양군은 해당 지역이 산양의 ‘번식지나 서식지’가 아닌 ‘이동 통로’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지만, 환경부의 케이블카 설치ㆍ운영 가이드라인에서는 멸종위기종 등 법적보호종의 주요 서식처를 피하도록 했다. 박 대표는 “산양의 행동권역은 1㎢도 안 된다”며 “이는 산양이 보이는 곳이 곧 서식지이자 번식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현재 운영 중인 관광용 케이블카 20여 곳 중 통영 미륵산ㆍ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만 흑자를 내고 있다”며 “경제성 계산도 부풀렸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전날 “케이블카 평균(72%)보다 낮게 운영비(전체 매출 대비 48%)를 책정한 만큼 경제성 분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2~6번째 지주 사이 거리가 500m를 넘어 초속 15m 돌풍이 불 경우 탈선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제시됐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의 이동권 확충이 우선”이라며 “케이블카 설치의 방패막이로 장애인을 기만하지 말라”는 성명도 냈다.

무엇보다 박 대표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승인으로 무분별한 자연개발의 빗장이 열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ㆍ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ㆍ백두대간보호지역 등 5개 보호지역이 중복 지정된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이후 전국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그는 “산은 산 그대로의 모습일 때 가장 아름답다”며 “경관을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한 4대강 사업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ㆍ사진=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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