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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는다, 고로 존재한다] 노스탤지어와 찢어진 청바지

입력
2015.08.2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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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요즘 유행하는 디스트로이드 진을 샀다. 일명 찢어진 청바지다. 이것은 1970년대 히피문화의 일환으로 등장했다. 60년대의 과속성장을 반성하듯 히피들은 겸손의 의미로 청바지를 찢고 삶 속에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뜻으로 다른 빛깔의 천을 덧대었다. 80년대엔 가수 마돈나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성모(Madonna)를 노래했다. 미국의 정치적 보수주의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90년대엔 록 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도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다. 고도화되는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 ‘성장의 불가능성’을 발견한 세대의 염세적 태도와 좌절감을 노래 속에 담기 위해서였다. 이후로도 현재까지 찢어진 청바지는 캐주얼 패션의 주요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패션에서 옷을 찢는 관행은 오래되었다. 1340년경 유럽패션에는 혁명이 일어났다. 이전 시대에 느슨하고 헐렁한 겉옷만 입던 이들에게 ‘재단’기술이 태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옷은 인간의 몸에 꼭 맞게 만들어졌다. 팔, 상반신, 하반신과 같이 신체 각 부위를 따로 만들어서 조립하는 옷, 오늘날의 의상제작 방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생산방식은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바꾸었다. 옷 조각들이 제2의 피부인 양 인간 정체성의 조각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옷 조각을 조립해 한 벌의 옷으로 만들 듯, 사람들은 인간의 정신과 삶도 옷처럼 조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자신의 소매와 허리, 다리 부분에 칼집을 냈다. 일명 슬릿을 내고 실크로 만든 속옷을 칼집 밖으로 끄집어내 입었다. 특히 남자들은 슬릿 패션을 중세를 풍미한 기사들의 패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칼집을 내어 낡은 듯 보이게 해서 입는 외투는 오늘날 빈티지 느낌의 오토바이 재킷과 그 궤를 같이한다.

문제는 이런 패션을 당대의 도덕주의자와 신학자들이 질타하고 나선 것. 옷에 인위적으로 만든 균열은 신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질서가 혼탁해진 징표라며 법으로 금지해 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패션 스타일링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당시 증가하는 종교와 세속권력의 다툼에 교회와 멀어지는 이들이 늘어나던 시대, 애먼 옷에다 스트레스를 풀었던 걸까. 슬릿을 넣은 의복이 남자패션으로 확 뜬 건 16세기다. 옷의 각 부위에 칼질을 하고 안에 다양한 색을 덧대어 입었다. 이 패션을 유행시킨 이는 다름 아닌 용병들이었다. 스위스 출신 용병들은 용맹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그들은 옷에 칼집을 냄으로써 전쟁터의 치열한 기억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고 자연스레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기호로 사용했다.

이들 패션은 당대 상류계층을 매혹시켰다. 당시 유행현상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데, 천민이었던 용병패션이 상류층으로 옮겨간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스트리트 패션이었다. 이와 함께 새로운 단어가 사회 속에 잉태된다. 바로 노스탤지어라는 단어다. 이 말은 그리스어 ‘노스토스(nostos, 귀향)’와 ‘알고스(algos, 고통)가 조합된 말로서 17세기, 고향을 떠나 용병이 된 스위스 청년들이 걸린 정체불명의 질환을 가리키는 병리학 용어였다. 노스탤지어를 고향을 잃어버린 자의 내적 상실감으로 해석했던 이가 17세기 철학자 칸트다. 용병처럼 누군가에게 귀속되어 돈을 받고 싸우면서도 갖은 천시를 받던 이들은 오늘날의 7포 세대인 청년들을 닮았다.

요즘 온라인에는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떠돈다. 그들에겐 돌아갈 고향이 없다. 패션은 항상 노스탤지어, 향수를 먹고 산다. 복고패션을 의미하는 레트로는 이런 정서의 산물이다. 이전 시대가 풀지 못한 숙제, 그 몫이 아래 세대에게 전가되고 그들을 힘들게 할수록 패션은 사실 그대로의 과거가 아닌 ’재구성하고 싶은‘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찢어진 청바지가 그 유행을 돌고 도는 건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김홍기ㆍ패션큐레이터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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