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타타. 떡갈나무 그늘에 나란히 앉아 건너편 경운기 소리를 들으며 왜 마을에는 소 키우는 집이 하나도 없는지 어르신께 물었다. 저 시끄럽고 규칙적인 공장소음 같은 기계음보다 움메~ 하는 소 울음소리가 진정 농촌에 어울리는 소리 같은데, 주변에 널린 풍부한 풀과 이곳의 지형적 특성에 따른 비탈밭들로 볼 때 소가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왜 경운기를…. 도시인의 철없는 질문에 어르신은 묵묵부답이셨다.
어린 시절 외갓집의 새벽, 저녁마다 소여물 익어가는 내음과 뿌연 김 가득했던 외양간이 떠오른다. 그 곳 한편에 놓여있던 소 혓바닥에 닳아 나뭇결 반들반들하게 드러난 폐 여물통. 배설물조차 훌륭한 거름으로 쓰일 정도로 소는 모든 농사일에 기본이던 때였다. 또 소는 중요한 재산 증식 수단이었으며 돈이 귀한 시골에서 쉽게 환전 가능한 재산이었다. 이자처럼 한 해에 한 마리씩 얻은 송아지는 도시로 나간 자식들의 등록금을 보장했다.
그러나 1970년대 농촌 근대화에 따른 경운기 등의 농기계 보급으로 농사일이 쉬워지면서 외양간도, 소울음도, 꼴 베는 아이들도 사라졌고 집집마다에는 농협대출금으로 구입한 경운기와 기름때 쩐 윤활유 통들이 생겨났다. 경운기는 소와 달리 운행과 유지에 돈이 들었고 몇 차례 인명 사고가 있을 정도로 마을의 비탈 지형과 좁은 농로에는 위험했다.
질문에 답하지 않던 당신은 ‘그때가 좋았지’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는 농사도 신났어. 왜냐하면 소랑 같이 하니까. 소도 농사를 좋아했어. 왜냐하면 내 노랫소리를 좋아했으니까.’ 노랫소리에 귀를 쫑긋쫑긋하는 것이 분명 당신 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단다. 장단에 따라 보속이 달라지는 것도 그렇고…. 그러다가 이러루~, 어저저~ 하면 알아들은 소는 움메~ 하고 방향을 바꿨다고…. 아니 고삐로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니라 소리로 바꾸셨다고요? 소가 그 소리를 알아듣는다고요? 그리하여 진천 문봉리 신만호 할아버지의 소모는 소리가 정리되었다. 이러루~(우로 가), 어저저~(좌로 가), 이랴~(가자! 가!), 우뤄~ 우뤄~(뒤로, 뒤로), 워~(멈춰).
‘일찍이 산협을 가던 중, 안개가 자욱이 퍼진 골에 머문 일이 있었는데, 소를 꾸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하늘 위에서 나오는 듯했는데, 정녕 간절하고 진심 어린 것이 마치 어린아이를 훈계하는 말과 같았다. 늦은 안개가 걷힐 무렵 비로소 보니 양쪽의 산과 준엄한 벼랑이 하늘에 꽂힌 듯한데, 농부가 두 마리 소를 나란히 메워 아직도 흰 구름을 두른 높은 곳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었다.’(최홍규 역) 200여년 전 박지원의 저서 ‘과농소초(課農小抄)’에 기술된 소 모는 장면이다.
소 모는 소리가 구수한 민요조 노랫가락 사이로 들려오는 밭갈이는 정녕 눈물겹도록 그립다. 노랫소리에 마음이 진정된 소의 밭갈이는 결코 힘든 일이 아니라 두 생명간의 소통이며 정서의 교감이었다. 밭갈이 중 농부의 유일한 말벗인 소. 길게는 20년 넘은 관계도 있었다 한다.
당연히 소리 사설에는 오랜 세월 같이 한 친구에 대한 감정은 물론 농부 본인의 신세타령조 심사 토로도 담길 수 있었다. 그러하니 정형화 될 수 없는 사설과 곡은 그때그때 농부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엮어졌다. 이 순간 그는 음유시인이며 작창가였다. 자연 속에서 짐승과 인간이 하나 된 소 모는 소리는 우경 노동요 이상의, 아름다운 공생의 증거이다. 그러나 경운기의 엔진 소음과 기름 냄새로 농부는 입을 막고, 흥겨웠던 교감의 농사는 단순한 고된 일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신께 소 한 마리 사 드리고 싶다. 뒷밭에서 당신 노랫가락과 소 모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러루~, 어저저~. 오늘도 조수석의 당신은 점잖게 나를 조정하신다. 지금 나는 당신의 한 마리 소가 되어 밭을 가는 중이다. 17번 국도라는 사래 긴 밭을.
황성호 작곡가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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