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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도 산업화 길목서 좌절… 마케팅 전략이 과학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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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도 산업화 길목서 좌절… 마케팅 전략이 과학을 살린다

입력
2015.08.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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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연구 실력 10위권인데

개발 신약 극소수만 제품화 성공

기초 과학·임상 의학 사이 간극

나라마다 다른 기준 개발 걸림돌

정부의 중개연구 지원 사업 복잡

임상의-연구자 '매칭' 기반 필요

‘암을 정복할 신물질을 개발했다’, ‘난치병 유전자를 찾아내 신약 개발에 다가섰다’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과학계 소식이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지만 아직까지 암 정복은 감감무소식이고 국산 신약은 구경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생명과학 연구 실력은 세계 10위권이지만 막상 연구 성과가 의료 현장이나 제약산업의 혁신으로 이어진 사례가 드물다.

연구 결과물도 시장에 팔려면 전략이 필요한데 학계나 산업계 모두 이를 잘 하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 기초와 임상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지원책은 다양하지만 연구자들은 여전히 산업화로 향한 지름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구 기술의 산업화를 위한 치밀한 전략과 원활한 중개의 부재로 많은 생명과학 연구가 산업화로 가는 길목에만 몰려 있는 ‘병목현상(보틀넥)’이 심각하다.

기술이전이 끝이 아니다

생명과학자 A씨는 국가 연구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난치병 치료제 후보물질의 특허 기술을 다국적제약사에 7년여 전 이전했다. 초기에 약 100억원을 투자하며 산업화에 공들이던 제약사는 갑자기 개발을 중단했다. A씨는 개발을 이어갈 다른 길을 찾기 위해 특허를 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제약사에서 이를 거부했다.

A씨는 소송을 고민했으나 다국적제약사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 소송을 벌이면 수년 씩 끌려 다닐 게 뻔해 포기했다. A씨는 힘들게 개발한 난치병 치료제 후보물질의 산업화를 막기 위한 제약사의 전략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특허권이나 관련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면 산업화에 성공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A씨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기술 이전은 시작일 뿐이다. 생명과학 분야의 특성상 기술 이전 후에도 임상시험 등 제품화까지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승인 및 허가 절차도 까다롭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국가 연구비로 개발된 기술이 국내에서 특허로 등록된 건수는 생명과학 분야가 4,966건으로 정보통신(7,390건)에 이어 2번째로 많았다. 기술이전 건수도 정보통신(3,157건)을 제치고 생명과학이 4,093건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선 여전히 국산 약이나 기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개발된 국산 신약은 개량신약까지 포함해 20개에 그친다. 한국제약협회에 따르면 이 가운데 연 매출 100억원 이상 제품은 고혈압치료제 카나브와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 뿐이다.

연구자에겐 낯선 개발 전략

성영철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자체 개발한 유전자(DNA) 치료백신을 제일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 국내 여러 의료기관에서 자궁경부암 전 단계인 자궁경부전암 환자들에게 임상시험 중이다. 이르면 5년 이내에 산업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성공하면 수술로만 완치됐던 자궁경부전암을 간단한 주사로 치료할 수 있다.

성 교수는 국내와 유럽에서는 병원과 협력해 임상시험을 하고 중국 시장을 겨냥해 현지 회사에 특허권을 50% 넘기는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성 교수는 “과학과 마케팅을 모두 아는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 처음부터 임상시험 진행과 특허권 이전 전략을 나라별로 각각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생명과학 성과를 산업화하기까지 큰 불확실성이 따른다. 나라마다 다른 시험 기준과 복잡한 규제가 걸림돌이다. 실험만 해왔던 연구자들에게 그만큼 산업화는 멀고 험한 길이다.

때문에 초기 연구개발 단계부터 기술사업화 전문가와 협업할 필요가 있다. 기술이전 이후에도 단계별 자금 확보나 마케팅, 투자 자금 회수 방안 등에 대한 전략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아쉽게도 국내에 연구자를 도와 이런 일을 맡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성 교수는 “정부에서 생명과학 기술의 산업화 경험을 가진 전문인력을 적극 양성하고 이들이 연구자들을 찾아다니며 맞춤형 도움을 줄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먼 기초-임상 간 거리

성 교수가 임상연구 병원을 확보한 것은 정부의 ‘중개연구’ 지원사업 도움이 컸다. 중개연구는 생명과학 성과를 제약이나 의료 현장으로 이어주는 연구다. 기초과학과 임상의학 사이 간격이 커서 연구 성과가 산업화하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2000년대 초 국제학계에 형성되면서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중개연구가 본격 확산됐다.

우리나라도 최근 국가 차원에서 중개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 교수처럼 적절한 도움을 받는 생명과학자는 많지 않다. 한 대학 교수는 “연구에 관심 있는 임상의를 중국 미국 등 외국 병원까지 직접 다니며 수소문해야 한다”며 한탄했다.

생명과학자들은 중개연구 지원사업의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세분화 돼 연구에 필요한 부처와 관련 사업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중개연구 개념조차 부처별로 다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창의적 시도를 잘 하는 임상의를 발굴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초연구자와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보고 있으나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기존 임상시험을 포함해 임상 적용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로 다르게 보고 있다. 그렇다 보니 미래부는 인물(의사), 복지부는 기관(병원)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져 기초연구자들에게 거리가 멀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기초연구자와 임상의의 자발적 ‘매칭’이 활발하게 이뤄 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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