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AIMP2라는 재능 많고 착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난소세포 안에 단백질 합성 효소들이 모여 사는 MSC(multi-tRNA synthetase complex) 마을에서 소년은 단백질 합성 효소들을 도우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난소세포가 암세포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AIMP2는 눈물을 머금고 정들었던 MSC 마을을 떠났습니다. (중략) 그때였습니다. 하늘에서 siRNA가 내려와 DX2의 근거지를 마구 공격했습니다. DX2가 사라지자 암세포는 치료제에 의해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세포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암 억제 인자인 AIMP2가 암 세포에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의인화해 아기자기하게 풀어낸 만화 내용이다. 이 만화는 서울대 의약바이오컨버전스 연구단의 바이오콘 스튜디오에서 제작했다. 과학학술지 ‘셀’에 게재된 복잡한 과학 연구 성과를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단 소속 권남훈 박사가 솜씨를 발휘했다. 그는 어릴 적 꿈이 만화가였다. 이렇게 만든 만화만 4편이다.
경기 광교테크노밸리 차세대융합기술원에 입주해 있는 바이오콘 스튜디오는 겉보기에 평범한 연구실이지만 소속 연구원 3명의 면면이 독특하다. 이들의 전공은 광고홍보, 정보기술(IT), 축산경영이다. 의약바이오와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업무는 ‘생명과학의 대중화’이다.
이들은 의약바이오컨버전스 연구단의 주요 연구 결과를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화, 이미지, 3D 영상으로 만든다. 전문성이 필요한 복잡한 영상 작업은 외부 그래픽 디자이너와 협업해 진행한다. 결과물은 홈페이지, 학회지, 각종 기술박람회 등에서 발표된다.
스튜디오 설립은 연구단장인 김성훈 서울대 바이오제약학과 교수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던 미국 MIT에서 예술가들에게 교수직을 주고 공학자 과학자들과 협업시켜 과학기술을 예술로 표현해 내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김 교수는 세계적 수준의 우리 과학기술이 산업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원인을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소통 부족’에서 찾고 있다. 그는 “연구 결과를 제대로 알리려면 예술 능력이 필요하다”며 “과학기술에 관심 있는 예술가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우리 연구를 깊이 들여다보게 해서 예술적 결과물로 내놓도록 협업하는 것이 스튜디오를 만든 취지”라고 말했다.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파묻혀 창의력을 상실해가는 지금의 연구 방식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이오콘 스튜디오는 일방적으로 과학자들이 연구 내용을 공유하고 알리는 것에서 나아가 대중들이 직접 생명과학과 예술을 접목시킨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바이오아트 공모전’도 매년 열고 있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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