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은행 직원들은 우리은행을 ‘워리(worry)은행’이라고 부른다. 자신들의 은행을 지칭하는 ‘우리(our) 은행’과 혼선이 생긴다는 이유다. 경쟁사에 대한 견제심을 담아 걱정스럽다는 뜻으로 붙인 별칭이다.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요즘 우리은행의 상황은 매우 걱정스럽다. 한때 기세등등했던 대한민국 최대은행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쪼그라드는 위세에 임직원들은 발을 동동 구르지만, 딱히 대처할 방법이 없다. 이유는 단 하나, 좀처럼 진척이 없는 민영화다. 매년 팔겠다고 내놓기는 하는데 팔리지는 않으니 당연한 결과다.
민영화의 발목을 잡는 건 2000년 법으로 강제한 민영화의 3대 원칙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다. 금융지주회사법 부칙 제6조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지주사 혹은 은행 주식을 처분할 때의 원칙으로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빠른 민영화, 금융산업 발전 등 3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비싸게, 빨리, 그리고 잘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얼굴도 예쁘고(혹은 잘 생기고), 공부도 잘 하고, 돈도 많은 애인을 사귀고 싶다는 연애 이상론과 비슷하다.
정부가 연례행사처럼 매번 민영화 방안을 내놓는 건 바로 두 번째 원칙, ‘빨리’ 때문이다. 서둘러 팔아야 한다고 법이 명시하고 있는데 시도조차 않는다면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정부가 정말로 ‘빨리’ 우리은행을 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나머지 두 원칙대로, ‘비싸게’ 그리고 ‘잘’ 팔 수 있다는 자신도, 또 의지도 없는 탓이다. 살 곳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아 비싸게 팔겠다며 지분을 통째로 파는 걸 고집하다 번번이 실패하고, 개인 대주주 회사나 외국기업이 사겠다고 덤벼들면 “금융산업 발전에 역행할 수 있다”는 걱정에 슬그머니 발을 빼는 것만 봐도 그렇다. 비싸게, 잘 팔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중에 무거운 책임을 지느니, 다소 욕은 먹겠지만 빨리 팔려는 노력을 했다는 시늉을 해서 법적인 책임만 피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매각 작업에 나섰던 금융당국 수장들도 겉으로는 “직을 걸겠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굳이 내 재임 중에 그런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계산을 하고 있었을 테다.
우리은행이 정부 소유가 된지 17년, 그리고 민영화의 첫 발을 내디딘 지도 벌써 햇수로 6년째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민영화가 늦어진다고 대단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정부 소유여서 이런저런 제약 요인이 많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경쟁사들과 견줘서 크게 밀릴 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정부가 팔기 쉽게 몸집을 줄이겠다고 지난해까지 우리투자증권, 우리자산운용,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 팔 다리를 모두 떼내서 매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우리은행과 우리카드뿐이다. 경쟁사들이 은행, 증권, 보험 등을 잇따라 사들이며 몸집을 불려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정부는 더 이상 개별 금융기관은 경쟁력이 없다며 복합점포를 허용하는 등 은행, 증권, 보험 등의 칸막이를 허물고 있다.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우리은행 가치가 추락하는 건 당연하다. 한때 2만5,000원을 웃돌았던 우리은행 주가는 이미 9,000원 안팎으로 주저앉았다. ‘빨리’ 팔지 않으면 ‘비싸게’ 팔 수도, ‘잘’ 팔 수도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임종룡 금융위원장 또한 앞선 금융당국 수장들처럼 우리은행 민영화에 큰 뜻은 없어 보인다. 얼마 전 지분을 쪼개 파는 5번째 매각 방안을 내놓으면서 심지어 매각일정조차 밝히지 않았다.
대신 요즘 금융당국의 관심은 온통 박근혜 대통령이 주문한 금융개혁과 핀테크 뿐이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인 우리은행 민영화는 뒷전에 밀려도 한참 밀려있다. 진짜 ‘워리은행’으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이지 싶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