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25일 ‘아이디:피스 비’로 데뷔한 보아의 15년
‘무릎 조심하소서.’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장 문 앞에 그룹 소녀시대가 가수 보아의 데뷔 15주년 기념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화환이 세워져 있었다. ‘진짜가 나타났다, 갓(God) 보아’란 글귀로 선배를 예우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문구로 보아에 친근함을 표한 게 눈길을 끌었다. 열 다섯 나이에 데뷔한 보아가 어느덧 서른이 돼 후배 가수들에게서 ‘무릎 조심하라’는 얘길 들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얘기다.
보아는 이날 공연에서 다시 15세 소녀로 돌아갔다. 데뷔 곡인‘아이디: 피스 비’로 활동하던 시절, 가운데 가르마를 탄 긴 생머리를 하고 춤을 추는 영상을 공개해 관객들에게 추억을 선물했다. 보아는 쑥스럽게 웃으며 ‘아이디:피스 비’의 춤을 췄다. 그는 “나이 서른에 열 다섯 살 흉내 내려니 힘들다”는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띄웠다. 보아는 개인적인 슬픔이 담긴 ‘아틀란티스 소녀’도 오랜 만에 꺼내 불렀다. 2003년 ‘아틀란티스 소녀’로 방송 활동을 할 때 매니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이후로 부르지 않았던 노래다. ‘넘버원’부터 ‘마이 네임’까지 자신의 15년 역사가 담긴 노래를 쏟아낸 보아는 결국 공연 마지막곡 ‘헬로’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수능은 보지 않았지만 이번 공연은 수능 보는 것처럼 떨렸다”는 보아의 말처럼 이번 15주년 기념 공연은 그에게 각별했다. 보아를 연습생 시절부터 지켜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한 관계자도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고 눈물을 몰래 훔쳤다. 김영민 SM 대표 등 소속사 식구들이 이날 보아의 무대를 지켜봤다. 이수만 SM 프로듀서는 25일 데뷔 15주년을 맞은 보아에게 따로 선물을 줘 그를 격려했다.
2000년 8월 25일 ‘아이디:피스 비’로 데뷔, 이날 꼭 15주년을 맞은 보아의 성장 과정은 혹독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8년 이수만 SM 프로듀서에 발탁된 보아는 2년 여의 연습 기간을 거쳐 마이크를 잡았다. 처음엔 라이브형 가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고음이 약해 노래 지적을 많이 받은 탓이다. 보아는 혹독한 연습으로 극복했다. 여전히 엄마 품이 그리울 나이지만 어리광은 사치였다. 보아는 일본 데뷔를 위해 2001년 현지로 건너가 홀로 NHK 방송사 아나운서의 집에 머물며 일본어를 배웠다. 항상 한일사전을 들고 다니며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바로 찾아봤다. 일본 인기그룹 스마프 멤버인 기무라 타쿠야를 좋아해 그가 나오는 방송을 보며 그가 하는 일본말은 통째로 외웠다.
이 ‘악바리 소녀’가 무대에서 일군 성과는 눈부시다. ‘넘버원’(2002) ‘아틀란티스 소녀’(2003) ‘마이 네임’(2004) ‘걸스 온 탑’(2005)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2000년대 초반 국내 솔로 댄스 여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 인기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보아는 2002년 일본에서 발매한 첫 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로 오리콘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한국 가수 최초의 기록으로, 아시아의 가장 큰 음반 시장에서 보아는 ‘아시아의 별’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보아는 이후 일본에서 발매한 5집 ‘메이드 인 트웬티’ 등 여섯 장의 정규 앨범을 연속으로 오리콘 앨범 차트 1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올렸다. 이는 아무로 나미에와 우타다 히카루도 세우지 못한 기록이다. 오리콘에 따르면 ‘하마사키 아유미에 이은 일본 역대 아티스트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보아의 성공은 에이벡스라는 현지 대형기획사를 통해 철저한 현지화 활동을 펼쳐 일군 성과라는 점에서 K팝의 해외 진출 방식에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김성한 음악평론가는 “일본 시장에 진출해 하마사키 아유미와 대등한 인기를 누리고 현지에서 아티스트로 인정을 받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며 “이는 K팝의 체계적인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에 보아의 개인적인 재능이 보태져 이룬 성과로, 솔로 가수로 일본에서 보아 만큼 성과를 거둘 가수 있는 가수는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보아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 ‘보아’로 2009년 미국에 진출,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200위권(127위)에 진입하기도 했다.
문제는 15주년 이후다. 국내 가요 시장에서 댄스 음악에 주력하는 솔로 여가수의 생명력은 이제 한계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짧은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보아에게 댄스 가수 이외의 다른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있다. Mnet 음악방송 ‘엠카운트다운’을 총괄하는 강희정 국장은 “보아는 데뷔 초 기획사에서 받은 곡으로만 노래하다 이제 자신이 직접 쓴 곡으로 활동하며 음악인으로 성장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보아는 데뷔 후 처음으로 지난 5월 낸 8집 ‘키스 마이 립스’를 전곡 자작곡으로 채웠다. 앞으로 보아의 발라드 활동에 기대를 거는 시각도 있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보아는 이제 화제성으로 통할 시기는 지났고, 음악적인 성과로 보여줘야 할 때”라며 “쉽지 않겠지만 자작곡으로 새로운 히트곡을 내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을 냈다. 보아는 최근 개봉한 SM 가수 기록 영화 ‘SM타운 더 스테이지’에서 “앞으로 (활동하는 음악스타일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으로 누군가의 친구로 남고 싶다”는 보아가 15년 후에도 현재진행형 가수로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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