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와 함께 하는 무한도전’ ‘○○투어로 떠나는 1박2일’ 등으로 예능 프로그램 제목이 바뀐다면 어떨까. 심지어 수시로 제목이 바뀔 수도 있다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다음달 내에 의결해 시행하려는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이 이런 일을 허용하려 하고 있다.
개정안은 협찬주명(로고 포함)·기업표어·상품명·상표 또는 위치를 방송 프로그램 제목에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협찬주명 외에 로고·기업표어·상품명·상표 등을 방송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선택 및 고지할 수 있고, 1회 고지 허용시간은 기존 5초에서 20~30초까지 늘렸으며, 고지 위치도 사업자 자율 선택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단 어린이를 주 시청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보도·시사·논평·토론 등 객관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방송프로그램은 제외했다. 시청률이 낮아 광고 판매가 어려운 방송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한 것이라는 게 방통위의 설명이다.
그러나 시청자를 비롯한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시청권 훼손”이라고 반기를 든다. 프로그램의 제목에 협찬사 이름을 내걸면 방송이 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협찬주에 따라 ‘○○건설과 함께 하는 무한도전’ ‘○○과자를 먹으며 떠나는 무한도전’ 등 프로그램명이 수시로 바뀌어 시청자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는데다, 협찬사 입김이 방송 내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결국 광고를 위한 프로그램이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더욱이 MBC ‘무한도전’, KBS ‘해피선데이’,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등 일부 인기 프로그램에만 협찬이 몰리는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가뜩이나 시청률이 낮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점점 소외되면 안 그래도 ‘예능 천하’인 현재 분위기가 고착될 수 있다. 방통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26일 토론회를 열어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오히려 방송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방통위의 일방적인 결정에 머쓱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방송심의규정 제46조는 ‘방송은 상품 서비스 기업 등이나 이와 관련된 명칭 상표 로고 슬로건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광고효과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한 방송관계자는 “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규정하는 규칙이 달라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시청자도 방송사도 고개를 갸웃하는 이 같은 정책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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