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5월5일. 한국일보 입사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국민 여러분 적기가 넘어왔습니다.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이것은 훈련이 아니고 실제상황입니다.” 오후 2시쯤, 갑자기 모든 라디오 정규방송이 중단되면서 다급한 목소리가 나왔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거꾸로 나에게 지시했다. “집에 쌀 있는지 확인하고, 얼른 라면 한 박스와 멸치 한 봉지 사 놓아라.” 납치된 중국 민항기가 평양으로 가려다 DMZ를 넘어 춘천에 착륙하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1994년 겨울. 워싱턴D.C.에서 근무할 때다. 폭설로 막힌 길을 헤치고 다운타운 슈퍼로 갔다. 그렇게 큰 매장에, 그렇게 많았던 우유 빵 베이컨 등이 이미 동이 나있었다. 한동안 길이 막힌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던 주민들이 일찌감치 식료품을 양껏 사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온 외국인을 슈퍼 점원은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 사회에선 으레 있는 ‘사재기(stockpile)’였다. 중국 민항기 사건 당시 6.25세대가 경험적으로 충고했던 ‘사재기(panic-buying)’와는 다르다.
▦시중의 품귀를 유도하여 폭리를 취하기 위해 물품을 사재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소위 매점매석(買占賣惜)의 ‘사재기(hoarding)’다. 예로부터 아전들이 공물을 매점하는 것을 질타하고 경계하는 상소문들이 조선왕조실록에도 많이 기록돼 있다. 지난해 말 담뱃값 폭등을 앞두고 담배를 매점매석하고 이후에 팔아 폭리를 취하다 구속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이런 유형의 사재기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도를 넘지 않는 사재기는 탓할 수 없고, 오히려 필요한 측면도 없지 않겠다 싶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있지만 국내에서 사재기 모습은 볼 수 없다. 1994년 북측의 “서울 불바다” 발언 직후 일부 있었지만 이후 1999년과 2002년 제1ㆍ제2 연평해전 때에도 사재기는 없었다. 이번에 북한이 거꾸로 ‘남쪽에서 사재기를 하느라 난리를 피우고 있다’는 흑색방송을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6.25의 기억’이 되살아날까 되레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응과 국민의 확실한 믿음으로 ‘사재기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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