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뉴노멀(new normalㆍ새로운 표준) 진입이 결코 풍문이 아님을 보여주는 실증적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성장 부진, 저물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화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질적 변화 흐름에 우리 역시 이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가상승률이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0%대에 머물며 깊어지고 있는 저물가 상황에 대해선 통화정책 당국인 한국은행이 최근 주목할 만한 분석 결과를 내놨다. 지난달 인플레이션보고서에 실린 보고서 ‘경제구조 변화와 인플레이션 동학’이 그것인데, 물가상승 수준의 기조를 보여주는 지표로 2000년대 3%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추세 인플레이션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1~2012년 무렵 2% 내외로 하락했으며 이는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한 ‘단절’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한은은 물가상승 압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구조적 요인으로 수요 측면에선 노동시장 이중구조, 고령화 등을, 공급 측면에선 글로벌화 진전, 유통구조 혁신 등을 각각 꼽았다.
고용 문제, 특히 미래 인적자본을 훼손하는 청년실업난 역시 금융위기를 거치며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LG경제연구원이 이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이 전체실업률을 초과하는 정도를 뜻하는 청년실업률 갭(gapㆍ차이)은 1980년대 이후 2~3%포인트,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3~4%포인트 수준에서 2012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올라 6%포인트를 돌파했다.(올해 1~7월 평균 청년실업률 10.0%) 청년 취업은 구직자에겐 첫 직장 선택, 구인자에겐 신규사원 채용이라 실업률을 얼마간 높이는 신중한 탐색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지금의 갭은 통상적 수준을 넘었다는 것이 연구원의 판단이다. 보고서의 한 구절을 마저 옮겨보자. “(청년실업률 갭 상승은)금융위기 이후 잠재성장능력이 떨어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업률과 경제성장률 간의 탄력치를 계산해보면 청년층은 전체 평균에 비해 경제성장에 따른 영향이 2배가량 높게 나타난다.” 성장률이 저하되면 청년층이 먼저 직격탄을 맞는다는 얘기다.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경제구조가 일대 변화를 맞았다는 인식에 바탕한 뉴노멀론은 성장 측면에서도 제법 들어맞는다. 위기 여파로 2009년 0.7%로 뚝 떨어졌다가 이듬해 6.5%로 반등했던 성장률은 이후 2, 3%대로 주저앉으며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가능한 성장률, 즉 한 나라 경제의 성장여력을 표시하는 잠재성장률 역시도 금융위기를 전후로 4%대 중반대에서 3%대 초중반대로 하락했다는 민관 기관의 추정치까지 확인하고 보면, 이러한 저성장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2000년대 들어 전년 대비 증가율이 최고 9.1%에 달했던 가계 소비지출이 3년 내리 1%대에 머물고 있는 것도, 기업 설비투자 증가율이 0%대로 급락한 뒤 급기야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도 모두 2012년을 기점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까지 확인하고 나면 한국 경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결론짓는 일이 그리 성급해 보이지 않는다.
경제 당국이 경기 부진에 맞서 재정 및 통화 확장 정책에 머물지 않고 구조개혁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뉴노멀 시대에 부합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저성장 상황을 ‘정상’에서 이탈한, 극복해야 할 ‘위기’로 여기는 정부의 인식으론 상황 타개에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진정 뉴노멀이 도래했다면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닌 삶의 조건인 까닭이다. 굳이 위기라는 말을 쓴다면 ‘위기의 일상화’야말로 뉴노멀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구조개혁은 한국 경제의 ‘재이륙’뿐 아니라 ‘연착륙’에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겨내야 할)위기와 (받아들여야 할)변화를 구분하는 인식의 전환을 정부가 이뤄낸다면 성장-분배, 수출-내수 등 경제운용 좌표 속에서 더 나은 해법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훈성 경제부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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