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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말석 차지했던 명왕성 '행성 지위' 잃다

입력
2015.08.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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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이 ‘행성 X’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해왕성 궤도에 간섭하는 힘으로 제 존재는 과시하면서도 정작 실체는 드러내지 않던, 해서 뭇 천체과학자들이 애달게 하던 시절. X는 1930년 2월 미국의 젊은 과학자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1906~1997)에게 제 자태를 처음 선뵀다. 태양서 가장 먼, 마지막 태양계의 주인을 맞이한 지구인들은 환호로 그를 반겼다. X에게 로마 신화의 저승 신 ‘플루토 Pluto’라는 이름을 준 이는, 공모로 당선된 잉글랜드의 11살 소녀 베네티아 버니(18~2009)였다. 그는 “(지구에서 가장 먼 그 행성이) 저승처럼 어둡고 추울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명왕성이 2006년 오늘(8월 24일) 행성 지위를 박탈 당했다.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천문연맹(IAU) 총회 표결에 따른 결정이었는데, 연맹의 행성정의위원회는 모름지기 태양계 행성이라면 태양 주위를 돌면서 충분한 질량과 자체중력으로 둥글어야 하고, 자신의 궤도 영역을 완전히 장악해 다른 천체들을 거느릴 만한 역량은 갖춘 천체여야 한다고 정했다. 달보다 작은 직경에 질량도 달의 1/6에 불과한 데다 위성 카론과 제 몸통 바깥의 질량중심을 공유하며 심하게 찌그러진 궤도를 공전하는 명왕성은 세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후 명왕성은 왜(矮)행성(dwarf planet), 꼬마행성의 무리 속으로 떠밀려나갔고, 태양계 멜로드라마의 비운의 주인공처럼 짠한 기억 속으로 멀어졌다.

소설가 박인홍이 단편 ‘명왕성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를 발표한 건 더 앞선 1993년 봄이었다. 카뮈의 ‘부조리’를 연상케 하는 ‘명왕성…’은 직장 승진 심사에서 부당하게 탈락한, 하지만 본인은 승진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주인공이 제 기분과는 상관없이 억지로 불행해지게 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위로 받아야 하고, 대신 분개해주는 이들의 말을 들어줘야 하고, 그의 표정을 살피는 이들의 시선까지 신경 써야 하는, 그래서 갑자기 피곤해져 버린 남자다. 명왕성의 심정이 그랬을까. 명왕성 탈락 소식이 전해졌을 무렵 시인 황인숙은 한국일보 ‘길 위의 이야기(06.8.29)’에서 “그(박인홍)가 입바른 말을 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죽음이나 어둠을 어느 별에 가탁한단 말인가?”라고 썼다.

미 항공우주국(NASA)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가 지구를 떠난 건 명왕성이 태양계의 마지막 미탐사 ‘행성’으로 남아있던 2006년 1월 19일이었다. 9년 6개월만인 지난 7월 탐사선이 보내온 ‘꼬마행성’ 명왕성의 사진(NASA 제공)을 옛 드라마의 잊힌 주인공을 재회하듯 바라본 이들이 있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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