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해고 지침 등 공동연구 제안"
쟁점 후순위로 미뤄 복귀 길트기
정부가 노사정 대화복귀의 핵심 쟁점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기준 완화와, 일반해고 지침 마련에 대해 노동계ㆍ경영계가 참여하는 공동연구 제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결과 공개까지 수개월 이상 걸려, 사실상 두 과제를 협상 후순위로 미루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노사정 협상에서 모든 의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 노동계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23일 본보가 입수한 고용노동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기준 완화와, 일반해고 지침에 대한 한국노총과 정부 입장을 검토한 후 보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간 한국노총은 두 과제를 협상에서 제외하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조건부 복귀’ 방침을, 정부는 “패키지딜(일괄타결)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모든 의제를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고용부는 26일까지 대화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노동개혁을 강행하겠다며 외견상 노동계를 크게 압박해왔다.
그러나 고용부가 마련한 내부 문건은 임금피크제 도입ㆍ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기준 마련을위해 노사정 공동 임금연구회ㆍ노사 임금체계 합리화 추진기구의 설치 및 운영을 제안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반해고 지침에 대해선 노동계ㆍ경영계가 참여하는 실태조사ㆍ연구용역 실시를 보완방안으로 제안했다. 이에 대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산하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에 참여한 한 교수는 “실태조사를 비롯한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 두 과제를 중장기 과제로 미룬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 선회는 한국노총의 방침과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앞서 지난 7일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본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정부가 두 과제를 후순위로 미루자고 제안할 경우 내부 의견조율을 거칠 의향이 있다”며 대화 재개의 문을 열어놓았다. 당초 한국노총은 노사정 협상 과정에서 논의 과제를 초기ㆍ중기ㆍ장기 과제로 나눠, 의견 대립이 심한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기존 2년→4년)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기준 완화, 일반해고 지침 마련 등은 장기과제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정부가 이러한 보완책 마련에 나선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 협상이 재개돼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보완방안을 제시한 이번 문건에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기준을 제정해도 (노동계와의)합의 가능성 및 실익이 크지 않고, 부당해고 사건은 노동위원회ㆍ법원의 소관사항으로 정부가 마련한 일반해고 지침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도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두 가지 논의(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기준 완화ㆍ일반해고 지침 마련)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밑그림이 흐트러졌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월 노사정 대타협은 이 같은 특정 사안에 매몰돼 결국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결렬됐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 “노사정 대화재개를 놓고 내홍을 겪는 노동계에게 복귀 명분을, 고용부는 협상 재개ㆍ현안 합의 실익을 챙길 수 있는 윈윈 전략”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노사정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한국노총은 기존 입장(두 과제의 논의 제외)의 연장선상에서 협상해 나갈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시민석 고용부 대변인은 “고용부에서 공식적으로 논의ㆍ검토된 바 없다”며 노동계를 포용할 수 있는 정부의 보완책 마련 사실을 부인했다. 한국노총은 26일 중앙집행위원회(중집위)에서 노사정 복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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