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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문화재 유통 해외까지 거미줄 루트, 적발·추적 혀 내두를만큼 '겹겹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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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문화재 유통 해외까지 거미줄 루트, 적발·추적 혀 내두를만큼 '겹겹 베일'

입력
2015.08.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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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회수율 20%도 못미쳐

행방 묘연한 국보급 등 넘쳐도

최종 구매자는 아무도 몰라

합법매매 위장… 죄 입증 난관

"장물 몰랐다" 발뺌 땐 처벌 못해

해외 반출 단속도 구멍 숭숭

▦백양사 아미타회상도 1994년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도난 당한 탱화로 10년 뒤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 전시되자 소유권 분쟁이 벌어졌다. 양측 교섭 끝에 백양사가 박물관에서 돌려 받았다.
▦백양사 아미타회상도 1994년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도난 당한 탱화로 10년 뒤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 전시되자 소유권 분쟁이 벌어졌다. 양측 교섭 끝에 백양사가 박물관에서 돌려 받았다.

문화재청 통계에 따르면 1985년부터 올 3월 말까지 705건의 문화재 도난 사건이 발생해 2만7,675점이 사라졌지만 20%도 안 되는 4,757점만 회수됐다. 소원화개첩처럼 행방이 묘연한 중요 도난 문화재가 널리고 널렸다는 얘기다. 이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낸다. 단순히 문화재 관리 허술 뿐만 아니라 절도ㆍ도굴범과 구매자로 연결되는 유통 루트가 전국이나 해외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서상복씨가 편지에서 직접 훔쳤거나 관여해 내막을 알고 있다고 한 문화재들만 봐도 그렇다. 국보 제150호로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송조표전총류, 보물 1554호로 지정된 순천 선암사 33조사도 11폭 중 4폭과 팔상도 8점, 팔만대장경 초판 인쇄본 중 불경 30여장도 불법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신원을 알 수 없는 구매자 손으로 들어갔다. 이 중 33조사도 일부가 회수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행방을 알 수 없다. 서씨는 불경의 경우 장당 수백만원, 조사도나 팔상도는 수천만원을 받고 대구 등에 있는 ‘상선’에게 넘겼다고 했지만 구매자에게 판매된 가격은 수억원을 호가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난 문화재 유통 고리는 ‘상선’

문화재 전문 절도ㆍ도굴범들 사이에 ‘나까마’ ‘가이다시’로 불리기도 하는 상선은 절도ㆍ도굴범과 구매자를 연결하는 단순한 브로커나 중간 다리가 아니다. 가치의 정도를 판단해 줄 정도로 문화재 식견이 높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절도ㆍ도굴범에게 사찰, 고택 등에서 특정 문화재를 훔쳐 오라는 ‘오더’까지 내릴 정도로 문화재 절도에 깊숙이 관여하는 경우까지 있다. 대개 합법적(?) 거래를 위해 골동품상이나 고서적 판매상으로 위장한다는 게 서씨의 말이다. 서씨는 국내 최고의 상선으로 P씨와 서울 인사동의 모 골동품상 사장을 지목했다. “명동 R호텔이나 정부종합청사 주변의 N호텔에서 만나 훔친 문화재를 거래하는 데, 상선인 P씨와 구매자의 청탁을 받은 감정위원과 인사동 화랑업자가 나와 가격 협상을 했다.” 서씨가 편지에 적은 내용이다. 상선과 구매자간의 거래에 영수증과 계약서가 작성되지만 죽은 사람과 해외 체류자 등 허위 내용이 기재된다. 구매자 측은 합법적 거래 근거를 갖기 위해 계약서가 필요하지만 가명 등은 거래선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상선이나 구매자나 그만큼 치밀하다.

자금 추적이 불가능한 무기명 채권이 거래에 사용되기도 한다. 서씨는 “한 번은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모 대기업에서 물건을 사들일 때 직원으로부터 1억원짜리 무기명채권 3장을 받았다. 문화재를 판매할 때마다 받은 무기명 채권만 30여장”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국내 문화재 도굴 일인자인 서상복씨가 보낸 옥중 편지. 그는 2011년 4월 출소하기 전까지 5년여 동안 도난 문화재를 둘러싼 밑바닥 이야기를 수백 통의 편지에 담아 보냈다.
국내 문화재 도굴 일인자인 서상복씨가 보낸 옥중 편지. 그는 2011년 4월 출소하기 전까지 5년여 동안 도난 문화재를 둘러싼 밑바닥 이야기를 수백 통의 편지에 담아 보냈다.

▦장물인줄 몰랐다고 발뺌하면 처벌 어려워

도난 문화재 거래를 끊기 위해서는 상선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게 핵심이지만 그게 쉽지 않다.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기 때문이다. 장물을 직접 판매하거나 알선할 경우 법정형이 절도범보다 높기는 하다. 하지만 거래하는 물건이 장물이라는 것을 알고 거래했을 때만 처벌이 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구입은 했지만 장물인 줄 몰랐다고 발뺌하면 혐의 입증에 애를 먹는다”고 전했다. 문화재보호법이 형법보다 우선하는 특별법인데도 입법취지를 법률가조차 잘 모르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문화재수사 전담팀장을 맡았던 이영권 경감은 “형법에서는 장물취득 이후의 불법행위는 처벌하지 않지만, 문화재보호법은 장물취득 후의 양도, 운반, 은닉, 훼손 행위에 대해서도 별도 처벌이 가능하다”며 “법조인들이 문화재 범죄에 형법의 논리를 적용하면 처벌이 약해져 예방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문화재 관리 총체적 부실

특히 문화재 전문절도범의 주 표적인 사찰 문화재의 관리는 여전히 부실하다. 주지 스님이 문화재에 관심이 별로 없는데다 도난을 당하고도 책임을 우려해 쉬쉬하는 경우도 있다. 도난 문화재의 해외반출 역시 빈번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차단하기 위한 공항과 항만의 단속인력이 부족하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출입국 단속인력이 마약과 총기류 적발에 치중돼 있는데다 일부 스님들의 개인적 일탈까지 겹쳐 문화재 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도난 문화재 회수에 대한 당국의 관심 부족도 문제다. 경찰은 지난달 도난부터 회수까지 책임지는 문화재 전문 수사팀을 창설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수 십년 전부터 도난 문화재가 거래돼 온 점을 감안하면 다소 늦었다는 지적이다. 문화재를 전문으로 하는 검사와 판사가 거의 없는 점도 특수분야인 문화재 범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씨는 편지에서 “국내에 있는 문화재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해외에 전시된 문화재만 되찾아 오려고 혈안인데 개인 돈이건 국고든 펑펑 쓰는 모습이 우습다”고 비웃었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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