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인간의 출산은 왜 힘들까… 생식의 진화에 답하다

알림

인간의 출산은 왜 힘들까… 생식의 진화에 답하다

입력
2015.08.21 16:14
0 0

영장류 진화의 선구적 연구자

정자와 난자 기원부터 인간 복제·유전자 조작까지

수십억년 걸친 생식의 진화사를 흥미로운 질문으로 쉽게 설명

인간의 아기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긴 임신 기간과 힘든 출산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그 배경에는 생식의 진화사가 깔려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생물학이 현미경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과학자 레이우엔훅이 직접 렌즈를 갈아 만든 현미경으로 단세포 생물을 관찰하면서부터다. 그는 원생동물, 조류, 효모, 세균 등 주요 단세포 미생물을 발견함으로써 생물학의 새 장을 열었다. 인간의 정자를 현미경으로 처음 본 사람도 레이우엔훅이다. 1667년의 일이다. 그는 그게 정액을 오염시킨 작은 기생충이라고 생각했지 정자인 줄 몰랐다. 난자는 정자보다 훨씬 뒤에 알려졌다. 배아생물학의 선구자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가 1827년 인간과 기타 포유동물의 난자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그때까지도 정자와 난자라는 성세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은 생명이 자연 발생을 통해 무생물에서 생겨났다고 믿었다. 성을 매개로 한 생식의 기전이 밝혀져 생식생물학이 과학의 영역에 자리잡은 것은 5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에 생명이 태어난 지 30억년이 넘었지만, 인간 생식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로버트 마틴 지음, 김홍표 옮김 궁리 발행ㆍ436쪽ㆍ2만2,000원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는 성세포의 기원부터 인간 생식의 현재와 미래까지, 수십 억 년에 걸친 생식의 진화사를 다루는 책이다. 아이를 갖거나 키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굳이 이처럼 긴 시간 여행이 필요 있을까 싶지만, 그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 사실 척추동물과 유인원 조상이 진화해 온 오랜 바탕 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 생식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왔는지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보다 나은 기초를 제공하려는 게 이 책의 목표다. 저자는 영장류 진화, 발생생물학, 생물인류학의 선구적 연구자다.

정자와 난자 이야기로 시작한다. 왜 난자는 정자보다 클까. 단 한 개의 난자를 수정시키는 데 왜 2억 개가 넘는 정자가 필요할까. 비스페놀A 같은 환경 오염물질의 영향으로 남성의 정자 수가 급감하고 있는 지금, 미래의 인간 생식은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제 8장은 인간 생식의 미래를 묻는다. 산아 제한, 출산 장려, 인공수정, 대리모, 유전자 조작과 인간 복제 등 인간 생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에 대해 실제 사례를 거론하며 과학적,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생식은 내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일이자 인류의 미래를 쓰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어떻게 아기를 갖고 키울 수 있게 진화했는지 추적하는 이 책은 생리 주기와 계절성, 짝짓기와 임신, 출산, 수유, 젖 떼기까지 육아의 진화적 배경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한편, 성교육서로 읽을 수 있는 실용적 정보도 담고 있다. 사진과 그림이 하나도 없고 400쪽이 넘는 꽤 두툼한 책이지만, 흥미로운 질문과 알기 쉬운 설명 덕분에 매끄럽게 넘어간다.

성세포인 정자의 머리에 호문쿨루스라는 축소 인간이 들어있다고 믿었던 17세기 네덜란드 물리학자 하르트쇠케르가 그린 호문쿨루스 상상화. 위키피디아

우리 몸의 생식기관은 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을까, 성세포가 활발한 시기가 따로 있는 걸까, 다른 동물들은 새끼를 쑥쑥 낳는데 인간의 출산은 왜 목숨을 위협할 만큼 어려운 일이 됐을까 등 수많은 질문들을 저자는 비교생물학과 진화의 시각에서 풀어간다. 예컨대 인간의 아기가 고릴라나 침팬지, 오랑우탄의 새끼에 비해 커다란 몸과 큰 뇌를 갖고 태어나는 까닭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최초의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후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지나 호모 사피엔스 현생인류에 오기까지 신생아의 뇌 크기가 점점 커진 진화의 오랜 역사를, 다른 영장류나 포유류의 그것과 비교해 정리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여태껏 내가 자연계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지난 수백만 년 아니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해온 복잡한 시스템에 관한 무한한 감격과 존경”이라고 고백했다. “이 책을 통해 이 세상 어디에나, 예나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에도 어김없이 존재하고 있을 부모들과 그 감격을 공유하고 싶다”는 그는 인간 생식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 진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고. 인간 생식의 자연사를 추적하는 데 40년을 바친 과학자가 그 정수를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