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 남자 모습의 제우스, 누가 봐도 한국인처럼 생긴 석가모니상 등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신을 묘사한 작품들은, 인간이 ‘추상적 이상’에 대해 발휘할 수 있는 상상력이 물적 토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인간은 ‘구조 안의 동물’이라는 것.
이상 사회에 대한 인류 상상력의 변천을 그래픽노블로 소개한 이 책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읽힌다. 에덴동산부터 최근의 게릴라 가드닝(훼손된 지역과 화단에 꽃을 심어 가꾸는 원예 운동)까지 인류가 제안했던 수십 가지 유토피아들은 역설적으로 그 시대 사회 구조의 한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모세가 사람들을 인도했던 약속의 땅, 12세기 프랑스 단시(短詩)에 등장한 코카인 나라의 요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 배고픔 없는 낙원이었다. 계급 갈등이 심해진 18세기 소설 ‘로빈슨 크루소’ ‘해적들에 대한 일반 역사’가 묘사한 이상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다.
이들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노래하는데 그쳤지만 19세기 유토피아는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현실에서 실험된다. 뉴욕 사회주의 공동체 실험, 파리코뮌, 체칠리아 공동체 운동 등이다. 복잡다단해진 현대사회에서 유토피아는 아미시 공동체(엄격한 프로테스탄트 생활과 평화를 외치며 세계대전 참전을 거부한 미국의 공동체), 장미섬 공화국(1967년 엔지니어 조르조 로사가 이탈리아 아드리아해에 만든 면적 400㎡ 초소형국가로 세금 도피처로 이용된다는 이유로 이듬해 이탈리아 해군이 파괴시킴)처럼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발전한다.
작가의 낙관주의가 책 곳곳에 드러난다. 예컨대 코카인 나라 속 ‘마차는 말이 끌 필요 없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구절에 자동차를 그려 넣었다. 인류가 꿈꿔왔던 121가지 유토피아는 모두 실패나 공상으로 끝나지만 그 상상의 일부는 현실이 됐다는, 진보주의자다운 해석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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