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최고의 것에 대해 묻는다는 것은 편의적이면서, 나아가 속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실제적으로는, 그 질문을 통해 얻는 답변이 그 사람에 대해 다가가는 효율적인 수단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믿는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시쳇말로 현재 진행형의 사람에게 자신의 베스트를 뽑으라는 요청이, 나아가 하나의 소통 방식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똑같은 요청을 두 사람에게 했다. 대표작 5편을 꼽아 달라는 우문에 대한 답을, 두 사람은 미상불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보내왔다. 오태석 선생은 여기서도 생략과 비약의 문법을 놓지 않았다. 박근형 씨는 보다 분석적이고 되도록 이면 객관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직관 대 분석의 대비라고나 할까, 빅근형씨는 하룻밤 숙고 끝에 기자가 원하는대로, 아니 더할나위 없을 정도의 모범 답안을 보내왔다. 그러나 노장의 답은 또 다른 작품을 얼핏 보는 것만 같았다. 지방 세미나 참석차 가는 길, 일필휘지하듯 나온 답이다.
오태석
초분 1973
“70년대 초, 그때 누나있는 애들은 누나가 양갈보가 되기를 바랬지요. 그러면 이 땅을 떠날 수 있어서. 원심력과 구심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 받아 적었습니다. ”
우리의 역사에 대해 격렬히 교차하는 애증의 참람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무대를 그렇게 정리한다.
태 1974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육신을 외우고 역적이 되면 삼족을 멸한다 씨를 말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너의 외삼촌이 반역을 했다 그러믄 너도 따라죽는다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죽을 날이 그렇게 멀리 있는게 아니구나... 세상은 결코 만만한곳이 아니었습니다.”
춘풍의 처
“할아버지가 소실을 읍내에 두셨다고 해요. 생전에 할머니 우시는 거 본적이 없습니다. 사변 통에 부친이 납치 당하셨지요. 엄니 우시는 거 본적 없습니다. 팔 걷어붙이고 항시 웃었지요 밸 빠진 사람 모냥.”
심청이는 왜 두 번 임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80년대 후반,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도 난다하는 애들은 바지 주머니에 접히는 칼 가지고 다녔습니다. 평시 칼은 일본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애들이 칼 버튼을 눌러 칼날이 번쩍 빛나면 보기 영 거북하고 이상했지요. 다행이 10여년 지나믄서 그 빌어먹을 놈의 유행 없어졌습니다.”
‘백마강 달밤에'
“우리 어른들 돌아가시면서 하시는 말씀-형제간에 우애 있거라, 절대로 은혜에 보답하기를 잊지 말거라. 보은, 그거 모르면 버러지 돼 너. 내가 죽으면서도 같은 소리 할 겁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통한의 패장 계백의 원혼을 대동굿 현장으로 불러내는 접신(接神)의 무대다. 우리 민족의 성정을 관류하는 샤머니즘을 확인케 한다. 구성진 뽕짝 ‘꿈꾸는 백마강’의 노랫말마냥 옛날 같은 것은 깨어진 달빛뿐인지도 모른다.
박근형
* 쥐
“계속되는 홍수와 자연 재해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인육을 먹으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생활을 다룬 작품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을 치루고 살아가야 하는 동시대의 생존 경쟁과, 그런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나와 내 주변을 현실을 비틀어서 이야기 해 보고 싶었다. 1997년 혜화동1번지 2기 동인 페스티발로 선보였던 이 작품을 통해 관객과 평론가들이 박근형이란 작가를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버린 생활 가구와 낡은 갈탄 난로에 실제 장작을 때우며 공연을 한 덕분에 극장은 훈훈했고, 매일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과 지인들이 난로 주변에서 하루를 마감했었다.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청춘의 시절이기도 했고.“
* 청춘예찬
“암울한 현실 속에 희망의 빛이 한 줄기도 보이지 않는 가족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여러 가지 이유로 곤궁했던 내 삶의 모습과 의식의 반영된 작품이다.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는 언제나 청소년들의 삶의 우리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되기만을 바라는가? 그렇지 못한 소년들은 그들 인생에서 벌써 낙오자가 된 것인가? 등을 관객에게 질문해 보고 싶었다. '청춘예찬'은 내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다. 윤제문, 고수희, 박해일 같은 배우를 만나게 해 주었고, 이 작품 이후에 차비가 없어 밤에 집을 가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기존 연극 문법은 전혀 신경 안 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쓰고 연출했고, 연습 보면서 많이 운 작품이다.”
* 선착장에서
“한국인의 의식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과 박정희의 등장 이후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일부 경상도 사람들의 패권 의식을 울룽도 섬사람을 통해 풍자해 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속사포 같은 엄사장의 욕지거리가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다. 엄사장이 타인들을 향해 쉴 새 없이 내지르는 욕설과 분노는 결국 그 자신에게로 다가가는 것을 관객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엄사장 역의 엄효섭과 황마담 역의 황영희의 구수한 사투리 열연이 이 작품을 한국식 관객모독으로 승화시켰다고 믿고 있다. 이후 위의 두 배우는 많은 매체에서 러브콜이 들어왔고 아직까지도 자기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 연극의 후속작 ‘돌아온 엄사장’으로 <연극열전>에 참가했고, 올해 10월 최종 완결작인 ‘엄사장은 살아있다’를 지금 준비 중에 있다.”
*경숙이, 경숙아버지
“내 누이의 이름이 경숙이다. 이 연극은 내 누이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본 모티브로 하여 극을 만들었다. 바람처럼 살았던 아버지들의 인생과, 그 바람을 바위처럼 견디며 무식한 시대를 참아내셨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신파의 강요가 아닌 담담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결국은 자식과 부모세대의 화해로 읽히기도 하여 아쉬운 점도 있는 작품이다. 주인영과 김영필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잘 드러난 연극이다. 이 연극을 보고 우리누이 경숙이 많은 힘을 내어 기뻤다.”
* 너무 놀라지마라
“‘너무 놀라지마라’는 어느 선생님의 유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게 된 작품이다. 하지만 이연극의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 장영남이었다. 단원들과 남한산성 어딘가에서 회식을 하고, 2차로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은 배우 장영남의 모습은 그 전에 보았던 단아하고 소심한 모습과는 천지 차이였다. 나는 그 날 노래방에서 이 작품을 메모하였다. 노래방 도우미로 살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우리시대 불행한 중년여성의 모습을 통해, 일그러지고 뒤엉킨 우리들의 악취 나는 자화상을 관객들에게 말 해 보고 싶었다. 산울림극장 첫 공연이 지금도 생생하다. ”
평소 화법을 그대로 옮긴 듯한 오 선생의 답글에 붙인 겹따옴표의 무게가 새삼스럽다. 두 사람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 내리는 평가는 팬들은 물론 연구자들에게도 소중한 단서가 될 것으로 믿는다. (두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가장 자기다운 스타일로 증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장병욱 선임기자 aje@hankookilbo.com 사진 목화레퍼토리컴퍼니, 극단골목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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