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뭐하시냐?”
십 년도 훨씬 더 전 사회초년병 시절 최종면접 자리에서 들었던 이 말을 잊지 못한다.
업무를 잘 할 수 있는 능력과 경력,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인격적 성숙 등을 점검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나는 이런 질문이 나를 채용하는 데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안다. 아마 그분은 내가 혹시라도 정ㆍ관계 유력자의 자녀인지, 아니면 금융권이나 재계, 언론계 등에서 알 만한 사람의 딸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제약회사 다니는 회사원의 딸”이라는 답변에 무슨 회사인지, 직급은 어느 정도인지, 후속 질문까지 나왔지만 난 그저 평범한 회사원의 딸이었다.
이른바 ‘현대판 음서제’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두 현역 국회의원이 자녀들의 채용에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그때 일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당시도 채용 상황은 좋지 않았다. IMF 금융위기 직후 미취업 상태로 졸업해 세 곳의 직장을 전전하다 네 번째 회사에 신입으로 지원한 면접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청년 실업이 훨씬 더 심각하다. 웬만한 일자리는 다 비정규직이고 괜찮은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요즘 같은 때 ‘아버지가 뭐하시는지’는 십여년 전보다 채용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새정치연합 윤후덕 의원은 2013년 변호사인 딸이 대기업 법무팀에 채용되도록 청탁 전화를 넣은 사실이 밝혀졌다. 의혹이 제기되자 윤 의원은 시인했고 딸은 사직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은 의혹을 부인한다. 김 의원의 아들은 2013년 정부법무공단 소속 변호사에 채용됐는데, 당시 공단 이사장이었던 손범규 전 새누리당 의원과 김 의원이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 경력 변호사 채용 자격 요건을 완화한 것도 의혹의 근거다.
취업 경쟁률이 무려 200대 1로 알려진 정부법무공단은 일반 로펌에 비해 연봉도 후할 뿐 아니라 수임 영업을 안 해도 되기 때문에 변호사 경력 쌓으며 판사시험을 준비하기엔 딱 좋은 기관이다. 실제로 사법고시에 응시하다 로스쿨에 들어갔던 김 의원의 아들은 공단 변호사 경력을 바탕으로 경력 판사직에도 응시, 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 “로스쿨이 사시 떨어진 ‘금수저’ 자녀들의 판사 진출 통로로 이용된다”며 강력히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번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유력자 아버지들의 청탁은 곳곳에서 너무도 당연한 듯이 이뤄지고 있다.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지인의 취업 청탁으로 추정되는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다 들켰는데, “일자리가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지난 2010년 유명환 외교부장관은 딸이 통상전문직에 지원해 탈락했다가 규정을 바꾼 후 2차에서 특채된 사실이 드러나자 장관직에서 물러난 적도 있다.
유력자들의 자녀 취업 청탁을 비판하면 “네 자식이라고 생각해 보라”는 사람들이 있다. 자녀 위하는 마음은 어떤 부모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역지사지’ 논리는 위장 전입, 병역 기피 의혹이 제기될 때도 똑같이 등장한다.
물론 나도 두 딸을 보면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 부모로서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자기들의 미래를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자신감과 의지, 실천력 등을 키워나가도록 돕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의 공정한 경쟁을 회피하며 더 능력이 출중한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자리를 부모의 힘으로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부모의 힘으로 우회한 자녀가 과연 성숙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회에서 정정당당히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을 살아 온 ‘금수저’들이 열심히 노력한 ‘흙수저’들을 제치고 지속적으로 권력을 대물림한다면 그런 나라의 미래는 금빛이 아닌 흙빛이다. 젊은이들은 ‘헬조선’을 저주하며 다른 나라에서 기회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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