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음→교통사고→구조하러 온 소방대원에게 생매장→시민에게 구조→가족이 포기했다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하루에도 수백마리의 개들이 길을 잃거나 버려진다고 하지만 약 보름만에 이같은 일을 겪었다면 '기구한 견생(犬生)'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땅 속에 묻혔다 구조된 강아지를 생매장 한 장본인이 유기견 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소방구급대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 구급대원들은 이 강아지가 구조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죽었다고 판단해 땅에 묻은 것이었다.
지난 3일 오후 말티즈 2마리는 집안 대청소를 위해 용인 기흥구에 사는 지인에게 맡겨졌다. 하지만 줄이 풀리면서 근처를 돌아다녔고 밤 9시50분 경 이를 발견한 한 주민이 119에 신고를 한 것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개들을 포획을 하려고 했으나 이 중 1마리가 차도로 뛰어들면서 교통사고가 났고 사고를 수습한 소방대원 3명은 강아지가 죽었다고 판단해 포대에 강아지를 넣고 도로 옆 수풀에 묻어줬다는 것이다. ?
생매장당한 강아지는 다음날 오전 9시40분경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은 시민들에 의해 구조됐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현장 근처 CCTV영상을 분석한 결과 소방차량이 왔다간 사실을 확인하고 용인소방서에 확인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소방대원들은 “목줄이 있고 품종이 있어 반려견으로 생각해 ‘잘 예우해주자’는 생각에서 묻어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죽었다고 판단한 상태에서 땅에 묻어준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과실이나 동물 학대로 보기 어려워 형사입건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개 주인은 구조된 강아지 키우는 것을 잠시 포기했다가 19일 다시 강아지를 데려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사건 이후 보름이 지나도록 경찰이 CCTV 확인을 통해 소방서에 확인요청을 할 때까지 소방대원들이 침묵을 지킨 것에 대해 온라인에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대해 소방대원들은 “뉴스를 전혀 접하지 못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사체처리 과정 역시 시청의 청소행정과에 처리를 맡겨야 하는 원칙에는 어긋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소방대원들은 밤 10시경이었기 때문에 시청에 연락하기보다 본인들이 처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묻어줬다고 한다..
한 동물보호활동가는 “개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상황이었다고 해도 오히려 반려견이라고 판단했으면 병원에 인계해 생사를 확인하고, 체내 마이크로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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