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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 김] 커피 권하는 세상이 불편해

입력
2015.08.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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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래저래 미팅할 일이 많아졌다. 많게는 하루에 세 번씩 잡히기도 한다. 그런데 매번 가는 곳은 거기서 거기. 가게 주변 몇 군데 정해 놓고 다니는 커피 전문점들이다. 직업이 요리사인 탓에 점심 식사 시간은 짬 내기가 녹록지 않다. 때문에 다른 곳을 좀 잡아보려고 해도 식사를 함께 하긴 곤란하고 그렇다고 낮술을 할 수도 없고, 비즈니스 미팅에서 팥빙수를 먹기도 어색하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결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커피 전문점을 택하게 된다.

하루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4번의 미팅을 줄줄이 하게 됐다. 역시나 자주 가는 커피 전문점의 작은 비즈니스 룸에서였다. 마치 비즈니스 룸을 나 혼자 전세 낸 듯 쓴단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매 시간 커피 한 잔씩, 나갈 때도 한 잔을 샀다. 이날 마신 커피는 총 다섯 잔.

한 잔에 이렇게 많은 양의 커피를 하루에 네댓 번씩 마시는 건, 커피 애호가가 아닌 나로서는 고역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에 약 103~112mg의 카페인이 들어있다고 하니 약 108mg으로 어림잡으면 이날 하루 내가 커피로 섭취한 카페인은 540mg으로, 성인 기준 하루 섭취 권고량인 400mg보다 30% 이상 더 마신 셈이다. 커피에 쓰는 돈도 만만찮다. 이 가게는 이탈리안 커피 전문점이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4,800원을 받는다. 4,800원X4명X4번=7만6,800원 가량을 커피값으로 썼다.

커피값이 아까워서 하는 얘기도 아니고, 카페인을 과다 섭취해 잠을 설쳤기 때문에 하는 얘기도 아니다. 내가 궁금한 건 언제부터 갑자기 비즈니스 미팅이나 개인적 만남에서 커피가 ‘약방의 감초’가 됐냐는 거다. 하물며 커피 전문점을 대체할 것도 그리 마땅치 않다.

사실 나는 커피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오묘하고 멋진 맛’의 커피들이 보통 커피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겠고, 커피 전문점들이 내세우는 자기들만의 정체성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팅 때마다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마시기 때문에 그저 묻어가는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 성인이 가장 많이 먹는 게 쌀이나 김치가 아니라 커피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커피는 한국에서 생산되지도 않을뿐더러 유통과 생산 과정도 공정하지 않다고 알고 있다. 공정무역 상품을 사용하더라도 커피 농장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 개선되는 건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야말로 커피를 권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가 커피를 물처럼 마신다고 커피 농장 노동자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까? 게티이미지뱅크

커피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내가 커피색으로 물들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우리집만 봐도 그렇다. 주방에는 집들이 선물로 휴지나 세제 대신 받은 커피 원두가 족히 10통은 있고,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이 사다 준 희귀한 원두들도 꽤 많다. 결혼 선물로 받은 에스프레소 머신은, 비록 찬밥 신세긴 하지만 주방 한편에 제 자리를 꿰차고 있고, 요즘 유행하는 캡슐 추출기도 2대나 있다. 이쯤 되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커피 가게를 차려도 될 판이다.

아주 한심한 하소연일수도 있지만, 혹시 비즈니스 미팅이나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때 커피 대신 다른 즐길 거리가 있으면 공유 부탁 드린다. 분명 나만큼이나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꽤 있을 텐데 실제 이용하고 계신 유용한 팁, 추천 바란다. 하루 종일 내 입에서 풍기는 커피 냄새를 느끼는 건 매주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는 것만큼이나 정말 지겨운 일이다.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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